[민주당 대선공약 검증]공교육 정상화 재원조달 '안개속'

  • 입력 2002년 11월 19일 18시 10분


《동아일보는 한국정책학회와 공동으로 주요 정당의 대통령후보들이 제시한 선거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15일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공약을 검증한 데 이어 18일 150대 공약을 발표한 민주당의 정책공약의 허실을 따져봤다. 150대 공약 가운데 일상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병역 농업 의료 지방자치 문제 등을 검증 대상으로 골랐다. 국민통합21과 민주노동당의 공약도 발표되는 대로 검증할 예정이다.》

<예비군 편입기간과 민방위대 편성연령을 3년씩 단축하고 예비군 동원훈련 일수를 3일로 축소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국가 예비전력의 운영을 내실화하겠다.>

현재 300만명선인 예비군 운용에 드는 연간 예산은 국방 예산의 0.5% 정도인 600억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공약이 현실화되면 약 100만명의 예비군 규모 축소가 예상되고 연간 200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적 효과는 연간 2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자영업자나 기업 등이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업무손실을 입지 않음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이익이다.

이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예비군을 정예화, 상비군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역 복무 때의 주특기를 고려한 교육과 배치가 필요하며 예비군 훈련에 따른 보상도 현실화해야 한다. 예비군이 정예화되면 현역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역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 공약은 예비군 훈련에 따른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민생공약이자 예비군을 국가 방위의 실질적인 한 축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실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다만 국가 위기 대처에 필요한 인력 문제를 들어 국방 관계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목진휴(睦鎭烋)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현재 5% 수준인 ‘직접지불제도’를 농민 소득의 20%까지 확대해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농어민의 소득보전을 지원하겠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해 농업부문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할 때 농가소득 보전 대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직접지불제도는 논농사 직불제와 쌀소득보전 직불제, 친환경 직불제, 경영이양 직불제 등이 있으며 총 예산규모는 올해의 경우 4000억원이다. 임업을 제외한 올해 농업예산은 8조1800억원이다.

이 비율을 농민소득의 20%까지 확대한다면 5조3000억원 정도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2001년 현재 농가평균소득의 20%(가구당 420만원선)를 농가의 총수(135만4000호)를 곱한 금액(5조6800억원)에서 현 예산규모를 뺀 금액이다.

물론 모든 농가에 소득의 20%를 일괄지불하지는 않겠지만 만 5세 이하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과 보육, 실업계와 농어촌 고등학교에 대한 무상교육 등 다른 공약보다 추가 부담 발생 소지가 큰 정책을 공약하면서 재원마련을 위한 대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쌀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있는 국내 농업구조를 개선하여 농업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제고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소득보전만을 약속하는 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홍성걸(洪性傑)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새로운 여성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고, 고용 불평등을 해소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인 60%로 높이겠다.>

경제적 지위 향상을 통해 여성 권익을 신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공약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취업 현실을 감안하면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90년 47.0%, 2001년 48.1%, 올 2월 현재 47.5%로 90년대 이후 1% 올리는 데 10년이 걸렸다. 어떻게 집권 5년 간 10% 이상 끌어올릴지 궁금하다.

민주당은 50만개 일자리를 정보기술(IT) 분야 10만, 간호사 통역사 보육교사 영양사 미용사 같은 전문직 분야 10만, 창업 10만, 간병인 제도화 등 복지분야 15만, 교육 5만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IT와 대학교육 관련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미 여성으로 채워져 있는 일자리여서 추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남성의 60% 수준에 불과한 현실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내세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 감독 강화 등도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세부 공약으로 ‘16개 시도에 남녀차별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조사관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방 여성을 위해선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설치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복규(金福圭)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진료비 총액 상한선제도를 도입해 암 난치병 등 중증 또는 진료에 대한 국민 부담을 덜겠다.>

진료비 상한선제란 진료비가 1가구의 월 소득을 넘는 경우 개인은 초과분의 극히 일부만 지불하고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다. 연 수입 2400만원인 가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비로 3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월 소득인 200만원을 초과하는 100만원에 대해서는 현재 기준치인 ‘20% 본인부담’보다 적은 액수 즉, 20만원 미만을 부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혈액투석 백혈병 장기이식 뇌중풍 교통사고 등이 적용대상이다.

하지만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료비 관련 공약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 건강보험은 올해만도 2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현재는 ‘20%만 본인 부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 개인부담이 전체 치료비의 50% 정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과분은 20% 미만으로 부담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연간 수천억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없이 혜택 위주로 약속할 경우 눈속임이 될 수도 있다. 현재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하는 저소득층 비율은 3%선. 정부는 그나마 건강보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수혜자를 줄이고 있어 민주당의 진료비 상한선 도입은 정부의 긴축 의료정책과도 상치되는 측면이 있다.

윤태영(尹太永) 경희대 의대 교수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와 국회 등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하겠다.>

이 공약은 행정기능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옮김으로써 지방을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수도권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소극적인 수도권 억제정책에서 적극적 지방발전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문제 인식에 입각한 처방이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행정수도를 특정 지방도시로 이전할 경우 행정수도가 위치한 신도시의 인구와 산업집중을 유발하는 또 다른 ‘블랙홀’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이 구상하는 것처럼 서울의 유수 대학까지 신도시로 이전하면 신도시의 인구와 산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제2의 수도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민주당은 경제수도와 행정 및 정치수도가 뉴욕과 워싱턴으로 나뉘어 있는 미국처럼 신도시는 행정수도로 삼고 현재의 수도권은 경제수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발전모델은 전통적으로 시장기능이 약하고 정부기능이 강한 우리나라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본다. 민간의 정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특수성에 비춰 볼 때 행정기능이 밀집한 행정수도에 경제기능까지 집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권 과밀 해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토 균형발전에는 크게 기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유재원(柳在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앞뒤 안맞는 공약사례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대선 공약은 다른 후보에 비해 각론별로 상당히 구체적인 편이다. 그러나 공약실행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재정을 국내총생산(GDP)의 6%로 늘리겠다는 공약이다. 현재 GDP대비 4.5%인 교육재정을 6%로 확충하려면 7조5000억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임기 중에 조금씩 비율을 올려 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므로 한꺼번에 이만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원조달 방안은 분명치 않다.

만 5세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과 보육지원 및 유아 보육료 50% 국가지원에도 1조5000억원의 나랏돈이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다 나라 전체 예산의 10%선을 농어업 예산으로 확보하겠다는 공약에도 1조2000억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 현재 전체 예산의 8.8%인 농어업 예산을 이 정도로 늘리려면 다른 부문에서 예산을 깎아야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칼을 댈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는 것도 상당한 예산이 요구되는 대형 사업이다. 노 후보측은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신도시도 민간분양 형태로 수익자 부담에 따라 이뤄지므로 청사 이전 경비 정도만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예산전문가들은 초기 투자 때 정부 예산이 집중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저세율을 현행 12%에서 10%로 낮추고, 과세표준 3000만원 이하 봉급생활자에게 소득 공제 폭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결과적으로 세수 감소를 가져와 재정에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노 후보가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이면에는 연 평균 7%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정부나 민간연구소 등에서 잡고 있는 예상성장률 수준(5∼6%)과 비교할 때 최소한 한해 7000억∼1조6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또 상속증여세 완전포괄과세 제도 도입과 지하자금 양성화 등을 통해 ‘검은돈’을 찾아내고 국책 대형 사업을 전면 재정비하면 공약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게 노 후보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고위 관계자는 “성장률 7%는 우리 경제 체질에 비춰 볼 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목표”라며 “당장 내년부터 공적자금 빚을 갚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판에 농업과 교육 복지예산 등에 돈을 집중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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