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무효법안 어물쩍 넘기기’ 시도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59분


7일과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십건의 법률안이 의결정족수(재적 272명의 과반수인 의원 137명 출석)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처리돼 명백한 ‘무효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를 바로잡지 않고 어물쩍 넘기려 하고 있어 학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법안 무효화’ 논란은 이틀 동안 무더기로 통과된 114건의 법안 중 수십건이 70∼100명의 의원만 출석한 가운데 처리된 데서 빚어졌다. 헌법 제49조와 국회법 제109조는 법안 의결요건과 관련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137명 이상이 참석하지 않으면 본회의 의사진행 자체가 무효다.

이에 대해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10일 이들 법안의 처리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으나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해 문제의 법안들을 본회의에 재상정하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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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金成坤) 국회 의사국장도 “재의결할 경우 법적, 정치적 파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의결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본회의장 근처 복도 등에 있는 의원들도 관행상 출석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는 논리로 법안 처리가 무효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법조계 출신인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그처럼 심각한 절차상 하자가 있는 법안은 무효다. 해당 법률의 이해당사자들이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으므로 국회는 빠른 시일 내에 본회의를 다시 소집해 재의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명지대 허영(許營·헌법학) 교수는 “원칙적으로 본회의장 안에 있어야 출석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통과된 법안은 입법절차에 하자가 있으므로 무효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민전(金玟甸·정치학) 교수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헌법문란 행위다”며 “시민단체나 법안 이해당사자가 헌법소원을 낼 경우 이들 법안은 ‘무효’ 판결이 날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의결정족수 미달이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상황에서 법안처리를 진행해 법의 권위와 효력을 훼손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다”며 해당 법안을 재의결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이와 함께 당시 본회의를 진행한 국회의장단과 양당 원내총무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질 것과 재발방지책을 공약으로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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