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처 예비비에 숨겨 통치자금등 유용추정

  • 입력 2002년 11월 7일 06시 43분


지난달 30일 원안대로 통과된 2001년 회계연도예비비가운데국가정보원의‘활동경비’ 4000억원가량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년에는 국회예결위 전문위원 검토보고를 통해 기획예산처 예비비에 포함된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활동경비’의 사용총액 정도는 알려졌으나, 이달 2일 공개된 올해 예결위 결산심사 보고서에는 그것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정보기관 예산 및 결산에 대한 국회의 이같은 ‘겉핥기’ 심의 관행은 1963년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래 40년 동안 되풀이됐다.

한국외국어대 김상헌 교수(행정학)는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에 충당하기 위한 것’인데 국정원이 사용하는 예비비는 40년간 ‘지속적으로’ 포함돼 왔다는 점에서 예비비의 본래 목적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다른 부처들까지 덩달아 봉급인상액 등 당연히 본예산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을 예비비에 포함시킴으로써 국회심의를 피하고 부처 이익을 달성하는 ‘꼼수’를 써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체 예비비 예산은 갈수록 불어나 2002년 본예산을 기준으로 일반회계 대비 2.4%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장승우(張丞玗) 기획예산처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예결위에서 “일본의 경우 2002년도 일반회계 대비 예비비 비율은 0.4%로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고 우리와는 달리 국가안전보장예비비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국정원 예산을 감추고 있는 현행 예비비 제도가 이례적인 것임을 시인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성역처럼 여겨지던 국정원 소관 예비비가 조심스럽게나마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부터다. 그때까지는 국정원용 예비비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역대 통치자는 이 예비비를 통치자금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시 예결위 보고를 통해 1985년 1158억원, 1986년 1296억원, 1987년 1649억원, 1988년 1747억원이 당시 경제기획원 예비비 중 안기부가 사용한 금액이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이후 예비비 가운데 국정원 활동경비는 더 팽창해 작년 국회에서 원안 통과된 2000년도 결산 국정원 활동경비는 4047억원이었다.

국회예결위에 제출됐다가 올해 상반기 공개된 보고서(대표집필 연세대 경제학과 김영세 교수)는 “사회 전체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정치구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국가정보원이 우선적으로 예산구조의 투명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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