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총리서리 고집 저의 있다”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12분


한나라당은 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총리 대행을 임명하지 않고 총리서리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대해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총리 대행 체제를 가동치 않고 위헌 논란이 여전한 총리서리제를 거듭 강행하려는 것은 장상(張裳) 전 총리서리의 국회 동의안 부결에 따른 국정공백 책임을 한나라당에 덮어씌우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도 전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과거에도 총리가 부재중이면 경제 부총리가 대행을 할 수 있었고, 헌법학자들도 총리대행을 통해 얼마든지 국정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하는데도 굳이 돌아가려는 이유는 뻔하다”고 단정했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에 명문 규정이 돼있는 데도 대행 체제를 거부하고 서리 임명을 고집하는 것은 탄핵소추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조직법상 대행 임명 요건인 ‘사고’의 범주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총리직무대행을 임명한다 해도 직무대행의 권한에 대해 또다른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대행 임명을 않는 것은 이를 피해야 한다는 취지일 뿐이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법률안 공포 등 총리의 부서(副署)가 없는 문서의 적법성 논란에 대해서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결재로 처리할 수 있다”며 “총리 결재 사항도 대통령이 직접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차관의 해외 출장 결재는 총리의 전결 사안이지만 이를 차상급자인 대통령이 결재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법학자모임 법제발전硏 지적▼

국무총리의 공석 상태와 관련, 학계에서는 대체로 새 총리지명자가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을 때까지 경제부총리가 총리 직무대행을 맡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40여명의 법학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법제발전연구소(소장 석종현·石琮顯 단국대 교수)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경제부총리의 권한대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행 정부조직법을 위반한 명백한 위법행위다”고 지적했다.

주장의 근거는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순으로 직무를 대행한다’는 정부조직법 22조. 연구소측은 청와대측이 ‘사고’는 휴가나 해외출장 질병 등으로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 만큼 현재의 총리 부재 상태를 사고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법 해석이라고 밝혔다. 석 소장은 “행정관청의 권한 대리는 그 권한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인인 총리의 존재 여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도 “‘사고’의 개념에는 총리가 아예 없는 사퇴나 사망의 경우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다수 견해”라며 “굳이 총리서리 임명을 고집하는 것은 오기나 감정적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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