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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5월 6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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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해진 정-청의 홀로서기〓김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으로 이제 청와대 및 정부, 정치권의 관계는 형식상 행정부와 입법부라는 헌법상의 관계로 남게 됐다. 당정간의 창구가 없어짐에 따라 정부발의 입법을 여당이 대신 처리하던 관행도 사라지게 됐다.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가 이제 ‘제1당’ ‘제2당’의 관계로 정치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이 국무총리, 여당 대표,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하는 고위당정회의를 폐지한 것이나 김호식(金昊植) 국무조정실장이 4일 ‘여야 구별없는 당정협의 강화’를 각 부처에 지시한 것도 김 대통령의 당적 정리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었던 셈이다.
청와대도 이제 민주당의 측면 지원 없이 ‘홀로서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김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임한 뒤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과 민주당 지도부간의 연락채널도 이제 완전히 폐쇄될 것이 확실하다.
반면 민주당의 운신의 폭은 훨씬 넓어졌다. 수세적이었던 대통령의 아들 문제에 대해서도 ‘표심(票心)’을 겨냥해 수위를 높인 공세가 가능해졌다는 게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큰 수확이다.
이런 점 때문에 향후 정치권에서는 청문회나 국정조사가 양산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통령 주변 인사에 대한 권력형 비리의혹이 발생할 경우 과거처럼 민주당이 방패막이가 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로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설움을 톡톡히 경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 "국회의장단-삼임위장 주도"▼
▽여당 없어진 국회〓국회 운영에서도 상당한 지각변동이 나타날 전망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야 개념이 사라짐에 따라 민주당은 ‘집권 여당’에서 원내 2당으로 격하된 반면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의 위상은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의 의석은 전체 269석 중 133석으로 민주당(115석)과 자민련(15석)을 합친 의석보다 3석이 더 많은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탈당해도 민주당이 야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을 행사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당장 이달 말로 다가온 국회의장단과 상임위 구성 문제에서부터 원내 제1당으로서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강경 자세여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관례상 여당 몫이었던 국회의장직과 운영, 예결, 정보 등 주요 상임위원장도 놓칠 수 없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그래도 당장 여야 관계가 바뀔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제동을 걸 태세여서 의장단 구성 문제가 시한을 넘길 공산도 없지 않은 형편이다.
남은 변수는 자민련과 무소속 의원 등의 향배.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긴 하지만 과반수가 되기에는 2석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국회 운영의 주도권 행사를 위해선 자민련 의원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원내총무는 “국회의장은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의해 뽑더라도 최소한 부의장 1석과 상임위원장 2석은 자민련 몫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짐 벗은 노무현' 정계개편 구상 탄력▼
▽민주당의 진로〓김 대통령의 탈당으로 민주당의 헤게모니는 일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한화갑(韓和甲) 대표 중심의 신주류로 급속히 이동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은 ‘김심(金心)’에 의존했던 동교동계 구파가 좌장인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구속으로 붕괴직전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한 대표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순항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고위원 경선 후유증과 신구 주류간의 갈등으로 지명직 최고위원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민주당 지도부의 혼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노 후보 측은 DJ 탈당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DJ탈당 효과에 대해 “곱하기로 말하면 1이고 더하기로 하면 0”이라며 “DJ와의 차별화를 위한 아무런 프로젝트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노 후보가 아직 당내 기반이 취약해 DJ와의 갑작스러운 단절을 시도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 탈당이 노 후보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또 ‘DJ 당’의 이미지를 벗게 됨에 따라 노 후보의 ‘신민주대연합’ 구상이 탄력을 받게 됐고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내 민주계나 개혁파 의원들도 운신의 폭도 넓어진 셈이다. 노 후보 측은 이 같은 상황 변화를 바탕으로 당명 변경까지 본격 추진하고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