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核동결 인증 유보 의미

  • 입력 2002년 3월 21일 18시 53분


미국이 20일 북한의 핵동결 준수에 관한 인증은 유보하지만 중유 제공은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토록 압력을 가하면서도 이를 둘러싼 직접적인 외교적 마찰은 피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북한이 그동안 제네바 핵합의를 준수해 왔다고 인정해 온 미국이 이번에 입장을 바꾼 것은 대북 경수로 핵심부품 인도에 앞서 실시하게 돼 있는 IAEA의 핵사찰을 조기에 관철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중유는 제공… 외교마찰 피해▼

94년 10월 체결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활동을 당시 수준에서 동결하되 그 이전의 핵활동에 대한 검증은 경수로 핵심부품이 인도되는 시기에 실시토록 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은 당초 2003년에 1기를 완공하려 했으나 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공사 중단 등으로 지연돼 2005년 5월 핵심부품이 인도될 예정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20일 “이번 조치는 북한에 국제 의무와 합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라면서 IAEA의 조기사찰을 요구한 것은 북한이 과거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 검증하는 데 3, 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검증작업이 이뤄져야 경수로 핵심부품 전달에 차질이 없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제네바 합의의 이행방안 개선’을 대북 대화의 의제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부시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제네바 합의에 비판적인 공화당의 강경파들을 만족시킬 것으로 뉴욕 타임스지는 분석했다.

미국은 그러나 중유제공을 포함한 제네바 합의는 계속 이행하겠다고 밝혀 북한과의 외교적 위기를 피하고, 제네바 합의 이행을 적극 지지하는 한국과 일본을 무마시켰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반발을 감안해 핵동결에 대한 인증 유보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北반발땐 긴장고조 우려▼

그러나 북한이 경수로의 완공이 늦어지고 있는 데 따른 보상문제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IAEA의 조기사찰을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북-미 간에는 제네바 합의의 이행 지연에 대한 책임 공방 등 논란이 빚어질 개연성이 크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하면서 평양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어 앞으로 북한의 반응에 따라 제네바 합의 이행문제가 또 다른 긴장 고조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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