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석/北의 선택은 대화뿐

  • 입력 2002년 2월 21일 18시 10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평가와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모두 있다고 평가할 것이며, 외형적으로는 강도 높게 미국을 비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악의 축’ 발언으로 바짝 긴장했던 북한으로서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현안인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전쟁이 아닌 대화로 풀겠다고 천명한 점이나, 미국의 일방적 대북 요구의 대표 사례로 꼽혔던 재래식 무기문제를 공개 발언에서 언급하지 않은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이 북-미대화에 나설 수 있는 실질적인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惡의 축' 씻을 좋은 기회▼

그러나 북한은 부시 대통령이 분단 현장인 한국에 와서 북한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하고, 북한체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데 대해서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근본적인 북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 발언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에 기인한다. 북한은 스스로를 수령-당-대중이 통일체를 이루는 국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과 정권을 분리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북한은 공식적으로 강하게 반발할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부시 대통령이 행한 많은 자제된 대북 발언들의 정책적 효과를 그만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 대해 북한이 꼭 인식해야 할 점이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다소 신중해 보이는 미국의 대북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체질이나 9·11 테러사태 이후 변화된 그들의 세계전략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가장 온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한국 정부의 힘겨운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제 북한이 무엇인가 보여주지 않는 한, 이보다 더 절제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미국을 비난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화를 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특별히 강조하였고, 도라산역에서는 경의선 철도를 잇기 위한 침목에 한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서명을 하였다. 이렇듯 그가 남북대화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것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자신의 정책과 한국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을 병존시키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북-미대화 이전에 남북대화에 나오더라도 그것을 평화를 향한 의지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는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완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대화가 여전히 껄끄럽다면, 북한은 바로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북한 지도부는 우선 남북대화를 통해 현재의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자기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 지도부는 부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지난 1년 간 남북관계를 중단시킨 결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냉철히 되새겨보아야 한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을 돌려보려는 한국 정부의 힘겨운 노력을 민족공조보다 한미공조에 더 집착한다고 비난하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한층 강해진 미국의 불신뿐이다. 북한은 한미공조를 욕하지만 그나마 한미공조라는 명분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진정시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2~3개월내 행동 보여야▼

둘째,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면서도 정상회담 이후 갖가지 외부적 요소를 들이대며 남북대화를 지체시키는 것이 정당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북한 불신론’에 힘을 더해 주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 한반도 평화와 자신의 체제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불만스러운 점도 많겠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털고 하루속히 대화에 나서야 한다. 앞으로 2∼3개월 내에 새로운 변화가 없으면 부시 대통령은 다시 북한에 대해 여과 없는 부정적 언사들을 쏟아내며, 대북 정책에서 자제력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대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한국 정부도 부시를 설득할 명분을 찾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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