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벌써 과열 3]손벌리는 유권자

  • 입력 2002년 2월 15일 19시 04분


부끄러운 손
부끄러운 손
광주지역의 한 기초의원은 지난해 말 관내 아파트 부녀회에서 야유회를 간다며 찬조를 요구해 어쩔 수 없이 20만원 상당의 음료수와 주류를 전달했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관위의 단속도 무시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을 시켜 몰래 아파트 관리실에 맡겼다”고 실토했다.

얼마 전 경북의 한 단체장은 퇴근해 집에서 쉬고 있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는데 빼달라”는 지역주민의 부탁 전화를 받고 할 말을 잃었다.

16대 총선 당시 대구지역에 출마했던 K씨. 그는 최근 “당신의 재력과 우리의 조직을 활용하면 이번 구청장 선거에서 당선은 문제없다”는 선거브로커들의 유혹에 국회의원과 구청장 출마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 <1>너도나도 출사표
- <2>사전선거운동 백태

이렇듯 민선(民選)시대가 되면서 단체장이나 광역 및 기초의원을 지역대표가 아니라 ‘내가 뽑은 민원해결사’로 여기는 풍토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아직도 각종 행사에 단체장이나 출마예상자들의 참석을 요청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고 때묻은 정치인을 비난하면서도 은근히 손을 벌린다.

밤늦게 집에 전화를 걸어 ‘노래방비와 술값을 계산하라’고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수법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집단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선거 때 보자는 식의 ‘협박’도 다반사다. 지난해 11월 제주시 이도2지구 도시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은 시장실 앞에서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지 두고보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면민체육대회나 종친회 등의 초청장, 지역 내 연고도 없고 활동도 전혀 없는 유령단체의 화환이나 찬조금 요구, 날뛰는 선거브로커 등도 비뚤어진 유권자 의식의 발로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비리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부패구조도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지방의 모 건설업자는 “한번 단체장의 눈 밖에 나면 임기동안 지역 내 공사수주는 끝장이다”며 “이렇다 보니 유력 후보에게는 출마하기 전부터 줄을 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단체장들이 당선 이후 비리 등으로 구속되는 등 자질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변하지 않는 한 공명선거와 지방자치제의 정착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때마침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유권자부터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계각층에서 월드컵축구대회와 겹쳐 치러질 이번만은 공명선거를 실천해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와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지역 58개 시민단체와 부산공무원연합 등은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 벌써부터 ‘부정선거 감시 고발센터’를 운영하는 등 올바른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남지역 2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경남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도 유권자 감시운동 등의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6급 이하 공무원들의 협의체인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은 최근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나서는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를 근절하기로 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합 박재율(朴在律) 사무처장은 “이제 우리도 한 단계 성숙된 유권자 의식으로 깨끗한 선거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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