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돈 1]얼마나 썼나…작년 총선때 '兆단위' 돈 뿌렸다

  • 입력 2001년 12월 9일 18시 18분



《정치개혁의 시작과 끝은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라고 할 수 있다.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구리고 검은 돈이 공공연히 오가는 정치풍토 하에서는 사회정의는 물론 국가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가뜩이나 힘든 한국경제를 정치와 선거가 더욱 허덕이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정치개혁 논의도 예비선거나 당권-대권 분리와 같은 정치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깨끗한 선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주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같은 취지에서 동아일보는 연세대 국제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개혁 불모지대’로 남아있는 정치자금의 실태를 조사,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기 위한 시리즈를 마련했다.》

▼글 싣는 순서▼

- <1>얼마나 썼나
- <2>후원회와 후원금
- <3>어디에 얼마나 썼나?
- <4>민주당 경선비용
- <5>정치 브로커
- <6>제도개혁 어떻게

▼관련기사▼

- 후보1명이 30억이상 쓰기도
- 어느 낙선후보의 고백
- 2000총선 공동조사 어떻게 조사했나
- 대선-지방선거 치르는 내년엔…

지난해 4·13 총선의 선거자금 실태에 관한 동아일보사와 연세대 국제학연구소의 합동 조사 결과 드러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정리해본다.

▽‘도빈촌부(都貧村富)’ 현상〓전체적으로 도시보다 농촌에서의 선거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와 광역시 등 도시에서 출마한 후보들이 거둬들인 선거자금은 평균 4억7854만원이었지만, 도농혼합지역과 농촌 출신 후보들은 평균 5억5983만원을 모았다.

이같은 현상은 도시와 농촌의 선거문화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여전히 ‘맨투맨’식 유권자 접촉이 중요한 농촌지역에서 더 많은 ‘실탄(實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공조직의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높아 ‘돈선거의 약효’가 아직은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 출마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영남권 도농혼합지역에 출마한 한 낙선자는 “도시지역에만 10억원을 투입해 공조직을 가동했다. 자금이 부족해 인근 농촌지역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결국 공조직 가동이 안 된 농촌지역에서 경쟁자와 표차가 벌어져 낙선했다”고 아쉬워했다.

▽‘현역(現役) 효과’ 있나 없나〓수성(守城)을 해야 하는 현역의원 후보들이 도전자들보다 더 많은 선거자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현역의원 후보들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5억5867만원인 반면, 도전자들의 경우엔 4억7738만원에 그쳤다.

현역 효과가 감소 추세인 것도 현역의원들의 초조감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신인후보 당선 비율은 14대 총선 때는 33.8%였으나 15대와 16대는 40%(각 43.1%와 41.6%)를 넘었다.

또한 낙선자는 평균 5억7100만원, 당선자는 평균 4억34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1억원을 쓴 후보가 10억원을 쓴 후보를 이긴 경우도 있었다. 선거자금 규모와 당락은 별 관계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모은 돈 대부분을 썼다〓응답자 70명이 선거일 전 6개월 동안 모은 선거자금은 1인당 평균 5억1807만원이었고, 지출한 선거비용은 5억1만원이었다. 모은 대로 써버린 셈이다.

그러나 출마자들이 대충 모금액과 지출액을 맞춰서 응답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울지역의 한 야당 출마자는 “한국적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돈 얘기를 다 할 수는 없다. 출마자들이 실제 선거자금 모금액과 집행액의 전모를 밝히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실토하기도 했다.

특히 중앙당 차원의 음성적 자금 지원이나 비공식적인 사랑방좌담회나 사조직 활동에 들어간 비용은 출마자들이 밝히기를 극도로 꺼린다는 게 정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액수의 ‘공천헌금’도 여간해선 잘 파악되지 않을 것으로 정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출마자들이 스스로 밝힌 액수보다 실제는 2∼4배의 선거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정치권 인사들의 얘기에 따른다면 지난해 총선에선 조단위의 돈이 뿌려졌을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아무튼 출마자들이 밝힌 지출액수만 해도 선관위에 신고한 평균 지출액(6361만원)의 7.8배에 이른다. 거의 모든 출마자들이 터무니없이 액수를 줄여서 선관위 신고했음을 알 수 있다.

▽조직관리비는 ‘계륵(鷄肋)’〓출마자들은 한결같이 조직관리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본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데 득표효과는 회의적이고, 그렇다고 이를 외면할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인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응답자 대부분이 가장 비효율적인 지출항목으로 조직관리비를 꼽았다. 반면 가장 효율적인 선거자금 지출항목은 홍보비가 꼽혔다.

충청권의 한 낙선자는 “조직관리비만 5억원을 집행했는데 이 액수도 그나마 최소한에 그친 것”이라며 “상대 후보는 나보다 3, 4배는 더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자금은 언제 투입했나〓당선자와 낙선자, 현역의원과 비현역 후보의 선거자금 중점투입 시기는 조금씩 달랐다.

당선자는 선거운동기간 이전과 선거운동기간 중반(선거일 1주일 전)에 선거자금을 많이 투입했다. 반면 낙선자는 선거운동기간 종반(선거일 3일전)과 선거기간 초반에 자금을 많이 쏟아붓는 경향을 보였다.

또 현역의원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이전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했고, 비현역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초반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차이는 현역의원 후보의 경우 선거운동기간 이전부터 합법적인 의정보고회나 비합법적인 사랑방좌담회 등을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현실과 관계가 있다. 이에 따라 인지도가 낮은 데다 선거운동기간 이전에는 발이 꽁꽁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비현역 후보들은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인지도부터 높이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연욱·박성원·박민혁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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