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 잇단 NLL 침범…軍의 고민]北 비무장상선 대응 딜레마

  • 입력 2001년 6월 6일 18시 54분


북한 상선들의 잇단 영해 침범사건은 군에 쉽지 않은 과제들을 떠안겼다. 북방한계선(NLL) 사수는 어디까지인지, 적성국의 비무장 선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북한 상선에 제주해협이 개방되면 대비 태세는 충분한지 등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NLL은 절대 사수?〓우선 서해 쪽으로 70㎞ 이상, 동해 쪽으로 350㎞ 이상 뻗어 있는 NLL의 침범을 막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NLL은 1953년 정전 후 유엔군이 남측 선박의 북상을 막기 위해 설정했다. 이후 NLL은 북의 침범을 막는 군사분계선이 됐고 북측은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그은 ‘유령선’일 뿐”이라며 끊임없이 NLL 무력화를 시도해 왔다.

군은 일단 서해 NLL에 대해선 단호하다. 백령도 인근 해상은 그동안 북한 경비정의 잦은 침범으로 99년 서해교전까지 벌어졌던 민감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해의 경우 레이더 탐지 반경에도 들어오지 않는 원거리에서 북한 선박들이 NLL을 넘나드는 것은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6일 북한 상선 대홍단호가 NLL을 원거리에서 넘자 이를 ‘침범’으로 볼 것인지, ‘월선’으로 볼 것인지 군내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더욱이 대홍단호는 북에서 남하한 것이 아니고 남에서 북상했기 때문에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비무장 선박에 발포?〓군으로선 북한군이 아닌, 북한 민간 선박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가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다. 그동안 군의 임무는 주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무장 병력의 도발에 대응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적의(敵意)를 갖고 덤벼드는 북한군에 대해선 군의 작전 예규나 교전 규칙에 따라 단계별로 단호히 응징하면 됐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성격이 달랐고, 처음 있는 사태였다. 비무장 상선인데다 통신 검색 등에 순순히 응했고 위해 행위도 없었다.

정선 명령을 거부하는 적에겐 경고 사격→강제 정선→병력 투입 등의 대응을 했어야 하지만 선뜻 그런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은 이런 특수 상황 때문이었다. 군 관계자는 “작전은 과학이 아닌 기술적 측면이 많다”며 “확고한 주적(主敵) 개념을 기반으로 설정된 교전 규칙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 등에 대한 세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넓은 남해를?〓제주해협이 북한 선박에 개방될 경우 이를 이용한 북측의 불순한 의도를 어떻게 차단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현재의 해군력은 동해와 서해 북방한계선 및 일부 연안 방어에 집중돼 있어 남해의 해군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선으로 위장한 간첩선이나 정찰선의 침투 등을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상선에 특수작전부대원들을 잔뜩 싣고 내려오거나 북한 상선 아래쪽에 잠수함을 숨겨 침투시킨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우려했다.

또 해군 관계자는 “영해 근처에서 이동하는 북한 상선들을 하나하나 감시 추적하려면 함정 몇백척으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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