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계산된 도발에 南 어물쩍 양보

  • 입력 2001년 6월 3일 17시 29분


“북한 당국은 이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향후에는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북한 상선 3척의 영해 침범사건에 대한 정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3일 오후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는 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내놓았다. 정부는 향후 대응책에 대해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북측이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을 해올 경우 북한 선박의 ‘무해(無害)통항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정부는 “북한 상선이 쌀과 소금 등 생필품을 선적하고 있었고, 우리 해군의 통신검색에 적극 협조하면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이번에 한해 영해 통과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북측이 사전에 계산된 행동을 통해 제주해협에 대한 무해통항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뻔한데도 정부가 남북 화해분위기만을 내세워 너무 쉽게 물러선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정부의 결정은 비록 물리적 대응은 삼갔지만 ‘정전협정상의 적성국 선박’인 북한 상선의 영해 침범을 사실상의 ‘도발행위’로 간주해 즉각 작전에 들어갔던 군 당국의 대응마저 무색케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해군 관계자는 “앞으로 북한은 군함까지 제주해협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물론 정부의 방침은 최근 남북관계가 미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강경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자칫 남북관계에 새로운 분쟁을 낳고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파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북한의 무단 영해침범에 대해선 “의외의 사건”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부의 신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성호(諸成鎬)중앙대교수는 “남북은 정전체제의 틀에 따라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다만 남북이 국제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관계인 만큼 남북간 통항질서 등을 협의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춘호(朴椿浩)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국내법상 북한이 내국인지 외국인지도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따지다 보면 헌법상의 영토조항 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다”며 “이 문제의 법적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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