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선심성 사업' 의혹…"부풀리고 앞당기고 겹치고"

  • 입력 2001년 4월 22일 18시 54분


정부 각 부처의 내년 요구 사업 중 한나라당이 ‘선심성’ 이라고 지적한 사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농어촌 또는 수재민이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심성 사업과 특정 지역을 겨냥한 대규모 개발사업, 직능 사회단체를 ‘포섭’하기 위한 사업 등이다. 한나라당은 이밖에 사업타당성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사업’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다음은 한나라당이 지적한 주요 내용.

▽‘일반 선심성 사업’〓한나라당은 행정자치부가 요구한 ‘농어촌도로확충’ 사업(내년 1839억원)에 대해 정부가 선거철마다 되풀이해온 ‘농어촌 민원 해결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이 요구안은 지난달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주요 예산요구 현황에서 빠져 있어 의혹을 더하고 있다는 것.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비(4조7552억원)가 올해 예산액 대비 70.3% 늘어난 데 대해선 재정 여건이 어려운 상태에서 소득 이전 성격의 복지예산이 급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행자부가 농어촌 시군 지역 내의 읍면을 지역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요구한 ‘소도읍 개발사업(2000억원)’도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겨냥한 사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은 또 당초 2004년으로 예정됐다가 내년부터 실시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 확대실시 사업비 2713억원에 대해서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타당성 없는 대규모 SOC사업〓산업자원부가 내년 사업비용으로 1105억원을 요청한 ‘군산무역자유지역 개발사업’은 올해 예산액 327억원의 3.5배가량으로 늘어난 규모. 한나라당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충분한 사업 타당성에 대한 검토없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행자부가 총사업비 500억원을 요구한 ‘제주 4·3사건 위령사업’은 거창, 산청―함양사건 합동묘역사업 예산이 175억여원이었던 점에 비춰 형평성에서 벗어난다는 것.

문화관광부의 ‘국립남도국악원 사업’(내년 150억원)은 인구 4만인 전남 진도에 세워지게 돼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데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유교문화권 개발사업, 경부고속철도 건설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이 호남지역에 편중돼 있다고 주장했다.

▽직능 사회단체 포섭용 및 국정 홍보성 사업〓행자부는 민간단체 지원금을 올해 대비 38% 늘릴 것을 요구했다. 행자부는 또 10억5000만원을 들여 ‘국민안전봉사대’를 조직해 ‘범국민안전문화운동’을 펼치기로 했는데 한나라당은 이 조직이 대선에 활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국민의 정부 국정자료집 발간’(5억4000만원)과 K―TV 위성방송 운영 및 인터넷방송 사업(33억)은 대선과 관련한 정부의 홍보성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기타 문제 사업〓산자부가 요구한 ‘지역특화기술개발사업’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2000년도 연구기술개발 사업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산자부는 올해 예산보다 80억원이 늘어난 482억원을 요구했다.

과학기술부는 ‘국립서울과학관 이전 사업(259억원)’과 관련해 평당 30만원선인 이전 부지의 공시지가를 100만원으로 과다 책정했다. 또 ‘연구성과 권리화 지원사업(내년 150억)’의 경우 특허경비를 시장가격보다 2∼20배가량 높은 건당 500만원(국내특허)∼2억원(국제특허)으로 과다 계상했다는 게 한나라당 주장이다.

▽정부 반박〓교육부는 중학교 무상의무교육 확대 실시와 관련해 “원래 2004년 실시 예정이었으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에 하겠다는 의지에 따라 앞당겨 실시하게 된 것”이라며 “재원은 기존 교육재원이 아니라 내년 전체 예산액 순증분 가운데서 확보하게 된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혜택은 특성상 지원대상과 규모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이를 ‘대선’과 연결시켜 선심성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선심예산 논란' 전문가 진단▼

김광두교수(왼쪽)와 안충영교수

‘선심예산’ 논란은 선거를 앞둔 시기마다 끊임없이 문제가 됐던 사안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부 여당이 특별한 사유없이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집행하는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선거용 선심예산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가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해당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개별적으로 따져봐야 정치성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한다. 예산의 ‘정치성’은 철저하게 배제돼야 하지만 선거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행정부의 정상적인 업무 집행을 위축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과)는 “우선 순위에서 뒤진 사업을 갑자기 앞 순위로 올려 예산을 배정한 것인지, 아니면 각 부처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계획해온 사업인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최근 경기침체에 따라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선심성 예산인지를 가릴 때 경기부양 효과라는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급성 측면에서 다소 떨어지더라도 지역경기를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면 이를 선심행정으로 몰아붙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중앙대 안충영 교수(경제학과)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낭비성 전시효과성 사업은 자제돼야 한다”며 “그러나 장래를 내다보는 중요한 사업이 선심성 사업에 묶여 함께 골동품 취급돼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수도권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지방의 부품소재산업을 활성화하는 사업은 빨리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부처의 예산 실무자들은 대통령 선거가 내년말에 실시된다는 점이 예산편성을 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한 것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각 부처가 내년 사업내용과 예산요구액을 기획예산처에 공식 제출해야 하는 시기는 5월말.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각 부처로부터 내년에 어떤 사업을 벌일 것인지 구체적으로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며 “선심행정의 소지가 있다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추궁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원재·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