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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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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두 분은 한국에 오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 왔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무산자인 노동계급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려면 자본가를 타도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사회주의고, 남한은 자본주의다. 북한은 남한이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하고 남한의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통일 한반도에 사회주의를 착근해 유일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김정일의 생각이다. 6·25전쟁이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의 식민지이자 자본가들이 장악한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니, 6·25전쟁은 ‘정의의 전쟁’이고 ‘인민 해방전쟁’이 되는 것이다. 남침이론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 그렇다고 해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는가.
“미군 주둔 등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섣불리 (무력통일을 위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평화적인 통일전선전략을 만들었는데, 이 전략을 펼치기 위한 기구가 김용순이 이끄는 로동당의 대남 담당 기구다. 이 기구는 매우 큰데, 이렇게 큰 조직의 구성원이 밥을 먹고 살려면 끊임없이 일감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 계급만으로는 남한을 해방할 수 없으니 노동자와 가장 가까운 빈농과 노농동맹을 맺고, 또 외래 자본가와도 연계를 맺어 친북세력이 정권을 잡게 하자는 통일전선방안이다.
친북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은 사민복(私民服)을 입힌 수만 명의 특수부대원들을 일시에 내려보낸다. 이 특수부대원들에게는 청와대-국정원-언론사 등 각자 장악해야 할 목표가 할당돼 있다. 이때 국정원장 같은 이는 제거 1순위가 된다. 이로써 혁명이 완성되면 협조해온 자본가부터 쳐버린다. 1958년 북한은 사회주의 생산방식으로 전환을 마쳤다고 선언하고 이듬해 화폐개혁을 단행해 장롱 안에 돈을 숨겨둔 과거의 부자들을 하루 아침에 노동자로 만든 바 있다. 북한을 도와준 정주영씨라고 해서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 황회장이 논문과 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북한이 그러한 준비를 다 했다는 뜻인가.
“과거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철수하자 월맹 편에 선 중국 인민해방군은 (베트콩과 연계된) 특수 공작조직을 사이공에 침투해 무력침공이 아닌 방법으로 월남을 장악한 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군은 특수부대 훈련을 반복해오고 있는데, 11월13일부터 25일 사이 동북3성과 내몽골에서 이 훈련을 벌였다. 북한은 이 훈련에 인민군 정찰국 소속원 2000여명을 참가시키려고 했는데, 비밀이 새나가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지만 북한은 그들의 목표를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
- 최근 조명록과 올브라이트가 미국과 북한을 교차 방문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기본 태도는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는 정의의 전쟁(6·25전쟁)은 미군의 개입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때의 공포가 있어 북한은 미군이 있는 한 다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어 미군이 철수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통일의 자주성, 즉 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은 핵은 물론이고 남한을 두세번 잿더미로 만들 화력을 갖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은 적절한 시기를 택해 반드시 쳐내려 온다. 한국을 수호하는 주력은 국군이지만 인민군의 남침을 억제하는 데는 미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6·15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김대중 대통령은 민족주의를 갖고 통일을 하려고 하지만, 계급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을 자신들의 적(敵)인 부르주아로 본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부정하고 이들의 초상화도 걸지 못하게 한다. 통일전선전략을 펼칠 때는 민족 주체성을 거론하며 민족주의자와 대동단결을 강조하지만, 민족주의는 그들이 목표하는 바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처음부터 김정일이 책략을 갖고 한 것이다.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노동당 55돌 행사에 갔다온 이들에게는 모두 4시간씩 녹음되는 녹음기를 감춘 안내자가 붙어서 이들이 한 말을 전부 녹음해 놓았을 것이다. 계급주의자들은 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북한에 왔든 전부 적으로 본다. 북한은 무서운 곳이다. 이들이 녹음해놓은 것은 약점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통령이나 임동원 국정원장을 만나 북한의 속내에 대해 조언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취득한 정보를 모두 국정원에 제공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만난 적이 없다. 임동원 원장을 만난 것은 그가 국정원장에 취임한 직후 식사를 한 차례 같이한 것이 전부다.”
-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작년 10월 로동당 중앙위 군사위원회는 ‘앞으로 군 자금을 어디서 조달하는지를 놓고 논의에 들어가 한국 경제로부터 마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같은 방침을 초급 당비서에게까지 전달하고, 앞으로 남조선과 교류를 하더라도 절대 환상을 갖지 말라고 지시했다. 올 3월 말부터 대대적으로 사상교육 사업을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중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남북 정상이 만났으니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독재체제가 더욱 강화되었으므로 인민들은 이런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다.”
- 북한을 떠난 지 오래인데 그런 비밀을 어디에서 입수했는가.
“아직도 중국과 북한에는 우리와 선이 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 하지만 북한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는 이는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 로동당 군수공업부 1부부장은 박송봉(朴松奉)인데, 그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전담한다. 박송봉이 곧 방문단원으로 한국을 방문해 무엇을 챙길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로동당 선전선동부 실력자 등도 한국에 와 정보를 얻어 갈 것이다. 이것도 지난 10월 로동당 결정에 의한 것이다. 두고 보라.”
- 6·15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연방은 의미가 없다. 한쪽은 수령 절대주의고 한쪽은 민주체제인데 이것이 연방이란 형태로 어찌 양립할 수 있겠는가. 북한에서 말하는 자주성은 수령의 창발성만 인정하는 자주성이다. 그러나 보상 등가의 원칙이 있는 남한에서는 개인의 창발성을 인정하기 위해 자주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같은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이 다른데 어떻게 연방이 되겠는가. 북한은 연방제를 통해 남한 내에서 김정일 사상을 따르는 세력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계기로 활용할 속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군과 전인민-전당이 하나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남한 세력은 정치활동을 할 수가 없다.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연방제를 약속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한국이 손해다.”
-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그분은 성인의 반열(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뜻)에 올라선 분이니, 우리가 생각 못한 전략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
<이정훈/신동아 기자>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