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주문司正' 과연 실효 있을까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38분


청와대 8급 청소담당 직원이 수억원을 갈취하고 ‘금융개혁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금감원 부원장보가 수뢰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3일 강도 높은 공직 사정(司正)의지를 밝혀 대대적인 사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현상이 심각한 점에 비추어 사정의 필요성은 사정기관들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정치권에서 말부터 앞서는 사정은 결국 많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란 비판이 사정기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의 고강도 사정론이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가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제기한 뒤 한광옥(韓光玉)대통령 비서실장과의 협의를 거쳐 기정사실화됐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적지 않다.

▼ 표적시비등 부작용 우려 ▼

▽사정기관 반발〓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은 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와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 등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주문’에 따라 사정을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권이 검찰을 이렇게 난도질해놓고 뭘 하라는 것이냐”며 “청와대건 여권이건 각자 사정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검찰은 누가 지시한다고 따라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간부도 “사정이란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 감사원 등이 사전 준비와 협의를 통해 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먼저 사정 이야기를 꺼내면 사정의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토로했다. 그는 또 “더구나 일부 사정기관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사정기관이 자체 사정을 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사정을 미리 예고하고 시작하면 당한 사람은 ‘표적사정’이라며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이 평소대로 정상적인 사정업무를 하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다.

▼ 제도정비로 일상화 해야 ▼

▽각계 의견〓김일수(金日秀·법학)고려대교수는 “사정은 마치 ‘특별단속’처럼 극약처방식이어서는 안된다”며 “검찰 등 사정기관이 지속적, 일상적으로 사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힘을 실어줘야 부패척결에 기여하고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기원(尹琪源)변호사는 “사정이 특정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거나 특정 정파나 세력의 주장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국 보이기 위한 사정, 정치 사회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액션으로만 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양기대·신석호기자> 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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