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올브라이트 평양회담]양국관계 해빙 무르익어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59분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중단의사를 밝혀 북―미간의 최대 현안인 대포동 미사일 문제 해결이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김위원장의 발언을 토대로 협상을 벌여 다음 주 미사일 실무 전문가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했다. 이 회담에서는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외부 세계가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를 지원한다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지원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김위원장의 발언은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12일 미국측과 합의했던 미사일 관련 언급보다도 훨씬 발전된 것이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관련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미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김위원장이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의사’를 밝힘에 따라 그동안의 논란도 끝나게 됐다. 김 위원장은 7월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조건부 미사일 개발 중단 의사’를 밝혀 세계를 놀라게 했으나 이 발언의 진위여부가 도마에 올라 논란이 계속됐다.

어쨌든 김위원장의 조건부 발언이 농담이 아니었음이 확인됨에 따라 98년 8월 북한이 일본 해상을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후 고조돼 온 미사일 위기가 해결될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하느냐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또 다른 지원을 요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물론 미국이 협상상대로 나섰기 때문에 해결도 주도적으로 하겠지만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꼭 미국에만 위협을 주는 사안이 아니어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올브라이트 장관은 2차 회담에서 “미사일 문제 외에 안보 인권 테러문제 등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들도 논의했다”고 밝혀 각종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음을 내비쳤다.

김위원장은 회담에 앞서 “나는 우리가 어제 나눈 3시간의 대화가 (양국 간에 지속된) 50년의 침묵을 깨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서로가) 제스처를 하기보다는 신의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회담의 순항을 예고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조명록 제1부위원장이 주최한 오찬에도 참석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당사자들이) 약속한 책임을 수행하고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면서 “과거의 쓰라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의 장을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모든 국가가 국제무대에 나오고 지구촌의 규범을 지켜나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부위원장은 김계관 부상이 대신 읽은 답사에서 “두 나라가 정상적인 외교관계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서 “과거 수십년간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역사적인 해빙 단계에 도달했다”고 화답했다. 조부위원장은 “올브라이트 장관이 북―미 관계개선의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평양〓한기흥특파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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