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외교부 "손발 안 맞네"…아셈사무국 설치 이견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사무국을 만들면 관료화돼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외교통상부 당국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한국에 ASEM 사무국을 설치하는 방안을 회원국들과 협의하기로 했다.”(청와대 고위관계자)

서울 ASEM이 폐회한 21일 오후 청와대와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몇시간의 차이를 두고 정부측으로부터 이처럼 엇갈린 브리핑을 들었다.

외교부는 일관되게 “ASEM은 비공식 지역간 대화협의체로서 사무국 설치 등의 제도화에 반대한다”고 밝혀 왔다. 이번에 채택된 기본문서인 ‘2000 아시아유럽협력체제(AECF)’에도 ‘ASEM은 비공식 과정으로서 제도화될 필요성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청와대측의 발표가 맞다면 이는 ASEM의 기본방향에 역행하는 셈이 된다. 외교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정상간에 오고간 대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만 말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지난달 하순 김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총리의 정상회담 때도 있었다. 당시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양국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활발히 하고 농업기반 조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부 실무진은 “우리 입장에서만 모리총리의 발언을 해석한 감이 없지 않다”며 당황했다. 이 우려는 곧 현실화해 일본언론은 ‘모리총리는 경제지원에 부정적’ ‘양보는 식량까지, 경제지원은 곤란’ 등의 제목으로 청와대 발표와 전혀 다르게 보도했다.

이달 중순 이한동(李漢東)총리의 러시아 방문도 너무 성급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게 외교부관계자의 지적이다. 한 직원은 “‘위’에서 너무 급하게 러시아 방문을 결정하는 바람에 총리의 방러일정을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고 털어놓았다.

외교가에서는 “청와대가 너무 앞서가는 것인지, 아니면 외교부가 지나치게 신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외교의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반응들이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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