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새시대/4대 쟁점]"평화협정 누구와 체결하나"

  • 입력 2000년 10월 13일 23시 49분


《북한과 미국은 12일 발표된 공동성명을 통해 반세기에 걸친 적대감을 씻어 내고 양국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것임을 선언했다. 북―미관계의 급진전은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에도 그에 상응하는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변화의 급류 속에서 궁금한 것은 역시 북―미관계 진전이 과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인지, 정부의 남북대화 노력과 조화될 수 있을 것인지, 기존 4자회담의 틀과는 어떤 관계를 이룰 것인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쟁점별로 나눠 짚어 본다.》

▼북미관계 남북관계 함수▼

북―미관계 개선은 남북관계와 맞물려 돌아간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제를 지향하는 ‘페리 프로세스’에 기초를 둔 미국의 대북정책 추진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동시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 문제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 등과 맞물려 진행될 북―미관계의 변화가 남북관계와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느냐는 것.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의 대선(11월7일)과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만료(2001년1월20일)를 고려할 때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상당한 속도를 낼 것이기 때문.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10일) 행사 등을 이유로 이산가족후보자 명단교환 및 경제시찰단 파견 등 예정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처럼 미국과의 ‘판’이 크게 벌어지면 ‘대남사업’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북―미관계 개선은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안정화에 시너지(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

공동성명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한반도 환경이 변화됐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지적했듯이 남북관계 진전이 북―미관계의 기초라는 점에 북한과 미국이 인식을 같이한 것. 이는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포기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또 경제재건을 위해 남한과의 경협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북―미관계 진전을 남북관계와 병행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평화협정 어떻게 되나▼

북―미 공동성명의 핵심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합의한 대목이다.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공식적, 법률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이다.

공동성명에 따라 앞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는 급류를 탈 전망이다. 논의형식은 공동성명에 언급된 4자회담 또는 ‘다른 방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동안 남―북―미간에는 협정체결의 주체와 방식, 전제조건을 둘러싼 이견들이 많았기 때문.

우선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쉽게 버릴지 의문.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힘은 미국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북한이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 4자회담이 열려도 과거처럼 북―미가 주도하는 ‘2(북―미)+2(한―중)’ 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외교가에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으로 남―북―미간의 발전된 형태의 ‘3자 회담’이 평화협정 논의의 중심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제기된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과정에서 북한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지위문제도 민감한 사안. 북한으로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만큼 북한의 남침을 명분으로 한 유엔사와 미군이 해체 또는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올 것이 분명하다.

▼남북대화와 4자회담▼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으로 ‘4자회담’을 지목함에 따라 이를 ‘남북대화’와 어떻게 조정 조화시키느냐는 문제가 정부의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그동안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 당사자간에 이뤄져야 하며, 미국 중국이 4자회담을 통해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4자회담에는 소극적인 태도였다.

북―미 공동선언 후 정부 구상은 두 회담을 보완관계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두 회담 모두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된 만큼 우선 남북간 안보대화를 활성화하면서 4자회담과의 ‘교집합’을 늘려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남북대화를 진행해나가는데 ‘나침반’이 되는 것은 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다. 합의서에는 ‘남과 북이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해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이 위원회에서 대규모 부대 이동 및 군사 연습의 통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문제, 대량살상무기 제거 등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를 협의한다’는 등의 구체적 방향이 제시돼 있다.

정부는 남북간에 신뢰를 쌓게 되면 4자회담도 자연스럽게 남북이 주도하는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처음엔 4자가 만나지만 신뢰 구축을 토대로 남북이 먼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 중이 이를 지지 보장하는 ‘4→2→4’의 순서를 밟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북-미관계 3개 현안들▼

북―미 공동성명이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것은 장기적인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양국이 대사급 수교라는 정상적인 국가관계 수립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

구체적 시간표는 없지만 양측은 대강의 일정 협의를 마친 듯하다. 일단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이달말 북한을 방문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한 뒤 외교 공관 개설문제 등을 비롯해 북―미 수교 협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다만 양측은 쌍무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기 위한 조건들을 공동성명에서 일부 적시했다. 3대 현안인 △미사일 △핵 △테러 문제 등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맥을 뜯어보면 클린턴의 방북과 양국 관계 정상화 일정은 이들 문제의 해결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문제에 대해 일단 ‘발사 유예’ 입장을 밝혔다. 다만 북한이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하고 있는 미사일 수출 문제를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핵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은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한 접근 허용이라는 ‘성의 표시’를 했다.

남은 문제는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도호 납치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것. 외교가에서는 북측이 ‘납치범 제3국 추방’이란 형식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문제들이 올브라이트장관의 방북 때 해결되면 이어 클린턴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수교 일정이 명확해지리라는 관측이다.

<김영식·부형권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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