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이 말하는 「新黨소동 3가지 요인」

  • 입력 1999년 7월 22일 19시 13분


신당 창당 구상을 둘러싸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간에 빚어진 ‘혼선’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얘기가 22일에도 총리실 내에서 무성하게 나왔다.총리실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자민련 박철언(朴哲彦)부총재가 김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한 게 파문의 발단이라고 주장한다.

김총리는 15일 박부총재를 만난 뒤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고 묻는 김용채(金鎔采)총리비서실장에게 “정계개편 얘기는 전혀 없었고 ‘나도 경력이 있는데 장관이나 무슨 일을 맡겨달라’고 하더라”고 밝혔다는 것. 그러나 박부총재는 김총리를 만나기 전 자신에게 ‘2여+α’식 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김실장은 밝혔다.

박부총재가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만난 것은 다음날인 16일. 이같은 전후사정으로 볼 때 김대통령은 평소 합당론을 주장해 온 박부총재로부터 ‘전날 김총리와 만났는데 얘기가 잘됐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김총리와 신당 창당 논의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총리실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다음은 김실장이 전한 사태의 전말.

“김대통령은 휴일인 17일 경기 안산의 골프장에서 종교계 인사들과 골프를 하던 김총리에게 연락, 저녁에 워커힐빌라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 박부총재로부터 김총리의 ‘의중’을 전해들은 김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조속한 정계개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김총리는 ‘이런 문제는 두 사람이 얘기할 게 아니라 당 대 당 논의에 맡기자’고만 말했다. 김총리의 답변은 사실상 완곡한 거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김총리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에게 신당 창당과 관련한 실무작업에 착수토록 지시했을 개연성이 크다.”

DJP회동사실이 19일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김총리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합당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며 청와대측을 지목한 뒤 강력 반발, 합당론을 무산시킨 것도 이같은 정황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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