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제안」 왜 나왔나?]「동북아 경제블록」겨냥

  • 입력 1998년 9월 16일 19시 48분


‘한국 일본 두나라가 아시아의 경제통합을 주도하자.’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주한 일본대사의 16일 전경련 조찬회 발언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震央)으로 지목된 일본의 위기감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오구라 발언을 계기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실리를 찾는 적극적인 국가전략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외무부는 일본의 제안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오구라대사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일 과거사 문제가 매듭지어진 이후에나 민간차원의 논의를 거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자유무역지대 등을 논의하기에 앞서 한일 과거사나 일본문화 개방 등 산적한 현안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다.

일본측도 그동안 ‘문화장벽을 쌓으면서 대한(對韓)기술이전을 요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무조건적인 경협확대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오구라대사가 이날 제시한 ‘경제장관 간담회’도 구체적인 결실을 얻을 지는 아직 미지수.

오구라대사의 발언은 일단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을 묶는 동북아경제블록 구축을 지향하는 일본의 국가전략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아시아경제연구소 등 일본내 유력 지역연구기관들은 “구미 주도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북아권의 경협을 강화해 동남아경제블록과 대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막대한 투자를 해온 동남아권의 경제위기와 유러(EURO)화의 출범 등으로 동북아권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측에는 수차례 동북아 경제블록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일 두나라가 속한 지역경제블록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두가지. 그러나 APEC와 ASEM은 유럽연합(EU)은 물론 관세인하프로그램이 이미 진행중인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달리 구속력이 약해 큰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이홍배(李鴻培)연구위원은 “수입선다변화정책이 조기에 철폐되는 등 양국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민간차원에서라도 지역블록 설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