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미룰 수 없다⑧]「하향식 공천」

  • 입력 1998년 9월 4일 19시 29분


국내 정당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와 지방살림꾼을 뽑는 지방선거를 막론하고 후보자의 거의 대부분을 하향식으로 공천한다.

평소 당내민주화를 ‘지고(至高)의 선(善)’처럼 외치다가도 선거때만 되면 당총재 등 소수 핵심인사가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같은 ‘한국식 공천’에는 갖가지 폐단이 뒤따른다.

대표적인 폐단은 돈으로 공천을 사고 파는 이른바 ‘돈공천’.

‘6·4’지방선거때는 국민회의 나주시장 후보공천을 앞두고 4억원을 주고 받은 혐의로 이 지역 국회의원인 정호선(鄭鎬宣)의원의 동생 호웅씨와 전남도의원 김평기씨가 구속됐다.

호남의 한 의원은 “지방선거 당시 도의원 공천을 희망하는 한 인사가 찾아와 현찰 5억원이 든 가방을 두고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다음날 되돌려줬다”며 “당시 기초단체장은 10억원, 광역의원은 5억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방선거가 이 정도이니 총선에서 지역구나 전국구 공천을 둘러싸고 공천희망자와 계파보스간에 더 큰 액수가 오가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96년 ‘4·11’총선 당시 자민련 이필선(李必善)부총재와 박완규(朴完奎)당무위원은 “당이 전국구 상위권후보 공천과정에서 1백30억여원의 공천헌금을 요구한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확보하고 있다”며 공천헌금설을 주장, 큰 파문을 일으켰다.

또 총선후 자민련 정태영(鄭泰榮)전의원은 “전국구 공천을 위해 현금 1억원을 라면박스에 담아 김종필(金鍾泌)총재 자택에서 김총재에게 줬다가 총선후 반환을 요구, 5천만원씩 2차례에 걸쳐 돌려받았다”고 주장했다.

돈공천과 함께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을 후보로 갖다 꼽는 ‘낙하산공천’도 끊임없는 시비거리다.

‘7·21’재 보궐선거 당시 국민회의가 오랫동안 서울에 지역구를 갖고 활동해온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을 경기 광명을에 공천했다. 이는 선거승리를 위해서라면 당의 간판도 ‘낙하산공천’대상이 될 수 있는 우리만의 풍토를 보여준 예다. 자민련이 충북 옥천출신으로 고향에서만 3선의원을 지낸 박준병(朴俊炳)사무총장을 서울서초갑에 공천한 것도 같은 범주다.

자파몫을 챙기기 위한 내부혈투도 ‘한국식 공천’의 부작용 중 하나다.

‘6·4’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조순(趙淳)총재와 김윤환(金潤煥)부총재는 안동시장후보공천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 김부총재가 상당기간 총재단회의 참석을 거부하는 등 파열음을 냈다.

공천구조가 이렇다보니 의원이나 단체장이 평소 성실한 의정활동이나 행정수행보다는 보스의 눈치를 더 살피는 ‘줄서기’가 횡행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석종현(石琮顯)여의도연구소장은 “독일의 경우처럼 지구당에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후보를 뽑거나 최소한 당원들이 대의원을 뽑고 대의원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문 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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