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정국/전문가4인 긴급좌담]『게임의 룰이 필요』

  • 입력 1997년 10월 12일 20시 22분


《돌발한 「비자금폭로정국」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그 배경은 무엇이며 이번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정치권의 「비정상적인 정치자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권만학 경희대교수, 박원순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 송호근 서울대교수, 염재호 고려대교수가 「비자금폭로정국」의 배경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염재호교수〓대통령선거를 두 달여 남겨 놓고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예견된 면도 없지 않지만 충격적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데 또다시 기업이 관련된 문제가 터져 경제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시대를 청산하자고 하면서 그 수법이 구시대적이라는 점입니다. ▼박원순변호사〓김대중후보가 비자금을 받았다는 여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관행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완벽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은 「완벽한」 조작이라고 맞서 국민은 진실을 떠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양당의 주장대로라면 한쪽은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인데 법적인 문제에 앞서 우선 정치권의 도덕성 실종을 목격하는 것 같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호근교수〓정책대결을 벌이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공정경쟁 국면에서 일종의 개인적인 비방 형태의 전략이 구사돼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보비리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여당이기에 공격효과는 의심스럽습니다. [개인비방 난무 안타까워] ▼권만학교수〓이번 사건은 여당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여당은 조사권 수사권을 가진 정부와 가깝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정부가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데 여당이 이번에 정부의 권위 자체를 끌고 들어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료 입수가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폭로시점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10월 중순 신한국당 비주류가 이회창후보의 인기가 올라가지 않을 경우 탈당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여론조사에서 계속 야당후보가 1위, 여당후보가 2,3위를 다투는 것으로 나타나자 인기 만회와 비주류의 탈당 방지용으로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습니다. ▼송교수〓여당의 이번 공격 배경을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역구도로 TK정서가 과거처럼 탄탄치 않고 상대적으로 야당에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계층구도가 농정 실패로 과거 여농야도(與農野都)의 농촌표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전략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됩니다. ▼염교수〓비자금 문제를 신한국당이 전략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DJ마저도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서민층에 먹혀 들어간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DJ를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색깔과 지역카드인데 색깔은 JP를, 지역은 박태준씨 등 TK쪽을 끌어안으려고 함으로써 약해지고 있어 결국은 세번째 카드로 비자금 문제를 쓴 게 아닌가 합니다. ▼박변호사〓이제 여당이 대선자금 비자금 부분을 제기했으니까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대로 대선자금 전체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는 당연히 제기돼야 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절차적 적법성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권 여당이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자료를 현행 금융실명제에 관한 긴급명령을 위반하면서 입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대중후보의 비자금뿐 아니라 92년 대선자금의 실체가 이러한 국가기관의 개입여부와 함께 밝혀져야 합니다. ▼송교수〓진실 규명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정치개혁으로 잘못한 사람을 모두 척결한다면 정치공백의 우려도 있습니다. 비자금 진위를 가리는데 매달리다 보면 정치발전의 과제를 잃기 쉽다고 봅니다. 더구나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 1년 가까이 정책이나 정치공백의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까. ▼권교수〓칼자루 잡은 사람의 비리가 더 많고 칼끝에 선 사람의 비리가 적은데도 칼 끝에 선 사람을 잡기가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불공정 수사로 대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이 또한 불공정합니다. 정의를 세우기위해 이보다 더 큰 부정의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차기 정권에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토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송교수〓법을 운영하는 집권 여당이 법에 하소연하는 것을 보면서 해결방법을 새롭게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 지상주의가 아니고 법을 운영하는 정치, 갈등을 통합조정하는 예술로서의 정치력 발휘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갈등조정 정치력 절실] ▼염교수〓검찰이 당장 나서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바람직한지는 고려해봐야 합니다. 극한적인 방법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한다면 결국 점진적 민주화에 이바지하리라 봅니다. ▼권교수〓특별검사제 도입 등 객관적으로 신뢰성을 가진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만들어 수사해야 합니다. ▼염교수〓이번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처럼 제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비리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구조 등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제도의 문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송교수〓지역문제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모든 후보가 지역구도에 근거하면서도 정책공약은 지역갈등 해소와 통합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집권여당이라면 구체적인 전략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집중된 인적 물적 자원과 정보를 동서방향으로 돌리는 방안도 있습니다. ▼염교수〓정책이 없다는 게 실감납니다. TV토론을 봐도 색깔이 없습니다. 모두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을 언론이나 이익집단이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권교수〓정책대결이 중요한데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유권자가 얼마나 정책내용을 알고 평가할까 하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도 정책을 갖고 투표하는 사람은 20∼30%밖에 안됩니다. 정책을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지난 집권기간에 사는 게 얼마나 나아졌느냐」고 포괄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제도 차원의 해결책으로는 정치자금 제한과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이익집단의 압력을 배제하면서 기부금을 줄여 선거공영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당이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느냐, 또 받아들여도 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박변호사〓지금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정치자금에 의해 운영되던 정치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돈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정책과 비전에 의해 정당색깔이 분명해지고 자질이 뛰어난 후보가 선거에 의해 당선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사회단체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민도 사태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봅니다. 신한국당이 이번 사태를 무리하게 몰고가 야당탄압의 인상을 준다면 결과적으로 의도한 바와 반대로 야당에 이득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송교수〓국민이 정책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정책을 제시하는 쪽에서 차별성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못느끼는 측면도 강합니다. ▼염교수〓모든 후보가 당선되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색깔과 정책차이가 전혀 없게 되는 거죠. 여론을 주도하는 집단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번 대선이 한층 성숙하게 치러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도개혁 정책대결해야] ▼송교수〓정책은 지지기반이 단단해야 되는데 대개 30% 선의 지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진을 확보하려고 별 짓을 다하게 됩니다. 이번 비자금 정국도 그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마진을 향해 던진 창이 당선후에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문민개혁을 돌아보면 개인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보여도 제도와 관련된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음 정부의 과제는 개혁을 강하게 밀고나가 제도를 정착하는 일입니다. ▼박변호사〓내부고발자 보호, 정보공개 등 비빌 언덕이 없는 게 현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근간이 마련돼야 합니다. ▼권교수〓이번 문제는 정치와 경제가 살고 미래에 초석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잘못 풀면 정치의 공동화 현상이초래될가능성도있기때문입니다. ▼송교수〓대선은 민주발전에 기여하고 리더십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데 그러려면 서로 다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신공격이나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은 가능하면 유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치에는 원칙의 정치와 관용의 정치가 있는데 지금은 관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박변호사〓정경유착은 기업 이권 측면이 강했고 이로 인해 폐해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때문에 경제 민주화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도변화와 함께 의식의 변화가 필연적입니다. 이번 일은 지난 대선의 문제이고 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묻어둘 일은 아닙니다. 제대로 밝혀 재발방지와 정치발전의 큰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염교수〓이번 사태로 기업에 대한 외국의 신뢰성이 떨어질까 우려됩니다. 산업경쟁력이 없는 게 재벌위주 정경유착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이를 계기로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리〓양영채·김정수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