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굶주림 현장 『6·25때보다 비참』

  • 입력 1997년 4월 12일 08시 43분


<<압록강 근처 용연 마을의 고아원. 9명의 어린아이들이 다 떨어진 한 장의 담요밑에 나란히 누워있다. 어린이들은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두명은 너무 작아서 미숙아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아원 원장은 그들이 여섯살이라고 말했다. 관리들은 어린이들의 엄마가 지난 겨울에 죽었으며 이 어린이들도 십중팔구 굶주림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홀 하원의원 일행과 지난 4일부터 북한에 3일간 머문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바버라 스트레이빈기자는 11일자 북한기행에서 기근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식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채소로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기 2년여. 많은 북한인들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평양 밖으로 나가면 가슴을 저미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안주시. 이곳에 사는 김명혜양은 올해 14세이지만 나이의 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수많은 다른 북한사람들처럼 식량과 땔감을 찾기 위해 불모의 언덕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녀처럼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한끼밖에 먹지 못하고 있다. 밥상에는 멀건 나물죽, 부실한 옥수수빵, 작년에 거둬들인 배추의 겉잎 등만 오른다. 고천규 안주시 부시장은 『요즘은 한국전쟁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안주시에 마지막 배급곡물이 전달된 것은 지난달 26일. 고부시장도 다음 배급이 언제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용연 마을의 고아원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피부가 짓무른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때문에 힘이 없어 전혀 움직이지도 않는다. 고아원장 시매선씨는 산모의 영양부족으로 사산이 급증, 금년들어 그 지역의 신생아수가 예년의 절반수준인 40명선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안주 북쪽 박천의 병원 원장은 『지난겨울 30명의 어린이가 죽어 나갔다』고 말했다. 신의주의 한 병원은 난방이 되지 않아 한낮에도 입김이 보일 정도로 썰렁했다. 이 병원에는 항생제조차 없었다. 의사들도 하루 1백g밖에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고 있다. 근년들어 전에 없이 결핵이 창궐하고 있다고 한다. 8백병상 규모의 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환자수가 올들어 10∼15%나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주 희천에 다녀왔던 유엔아동기금(UNICEF) 현지 책임자 루나르 소렌슨은 현지 관리들로부터 7세 이하 어린이 8천8백명 가운데 3천4백명이 영양부족으로 성장을 멈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7백50명은 분명한 영양실조상태이고 1백40명은 「심각한 위험상태」라는 것이다. 국제기구와 북한관리들은 수년동안의 식량부족으로 쇠약해진 농민들이 올여름에 작물을 심고 가꿀 힘이 있을지 우려한다. 홍수때문에 토양이 황폐해진데다 산은 연료용으로 나무를 마구 베어 벌거숭이가 되었기 때문에 올여름 비가 쏟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계식량계획(WFP) 북한국장인 칼그렌은 『다음번 홍수를 막아낼 나무가 없다』고 말했다. 50년간 주체사상을 신봉해온 평양의 관리들에게는 가난에 찌든 북한의 실상이 외부에 노출된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북한 외교부관리들은 방문객들이 처참한 광경들을 사진에 담을때 당황하고 화가 난 모습을 보였다. 인구 30만명인 신의주의 식량배급소는 텅 비어 있었다. 연료와 물자 부족으로 이 도시의 석유화학공장들은 문을 닫았으며 근로자들은 대신 중국의 하청업자로 전락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고 현지관리들은 말했다. 신의주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 김공일은 우리 일행을 보고 『미국이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면서도 『만약 당신들이 식량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면 최고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직전의 상태인데도 북한주민들은 놀랄만큼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김일성의 85주년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매스게임을 연습하고 있었다. 〈정리〓조운경·고진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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