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與野없는 「입지싸움」…정계「빅뱅」땐 물거품

  • 입력 1997년 3월 27일 08시 54분


[임채청기자]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정치권 인사들의 입장이 갈수록 선명하고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외에 감추어진 「속내」와 앞으로 전개될 복잡미묘한 정국상황에 따른 입장변화까지 감안하면 더욱 갈피를 잡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내각제 논란속에 내재된 정치논리는 겉보기보다 단순하다. 찬성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은 나름대로 논리전개를 하고 있지만 핵심은 「독자집권」에 대한 자신감 여부로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나는 혼자 뛰어도 자신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대체로 적극적 반대론의 대열을 형성한다. 반대로 『나는 혼자 권력을 독점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며 나와 손잡는 세력에 충분한 권력적 배려를 할 수 있다』며 내각제나 권력분점론을 주장하는 쪽은 여러 정황상 혼자 뛰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정치권내 또는 당내세력에는 자신감이 부족하지만 여론의 지지도에 강한 편인 신한국당의 李會昌(이회창)대표와 朴燦鍾(박찬종)고문은 반대론의 선봉에 서 있다. 반대로 독자집권 역량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자민련의 金鍾泌(김종필)총재가 일찍부터 내각제에 정치적 장래를 거의 걸다시피하는 이유도 자명해진다. 신한국당내에서 李漢東(이한동) 李洪九(이홍구)고문이 갑자기 권력분산론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도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우선은 돌연 직면한 「이회창대표체제」라는 「쇼크」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두 사람의 접근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이회창대세론」을 막아야 하는 게 최우선적인 공통과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당내의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말」만으로 될 상황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 민자당시절 「金泳三(김영삼)대표」처럼 「구두약속」으로 당내 세력을 규합할 만한 처지가 못된다. 보다 분명한 「언질」 내지는 「제도적 사전보장」을 약속해야 한다. 민주계의 상황은 또다른 측면에서 복잡하다. 대표적 버팀목인 崔炯佑(최형우)고문마저 뇌졸중으로 회생 기약없이 쓰러져 확실하게 내놓을 만한 카드가 불확실해졌다. 金德龍(김덕룡)의원과 李仁濟(이인제)경기도지사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들을 대표주자로 내세우는데는 역풍이 거세다. 민주계 인사중 처음으로 내각제 개헌론을 적극 주장한 金守漢(김수한)국회의장은 26일 당무회의 발언을 통해 강력히 내각제 반대론을 편 김덕룡의원의 주장에 대해 『민주계 전체의 얘기가 될 수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김의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계 사람들이 내각제 개헌에 결사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계 원로인 김의장의 발언은 계파 중진들과의 충분한 교감과정을 거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미 상당수 민주계 인사들의 생각이 내각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 또한 위기에 처한 민주계의 활로모색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최형우고문도 이미 작년말부터 이한동 金潤煥(김윤환)고문 등과 여러차례 만나 「후보―당수 분리론」을 언급하며 내각제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문도 내각제를 염두에 두었음에 틀림없다. 민주계의 이같은 움직임과 이한동 이홍구고문의 권력분점보장론은 불완전하게나마 맥락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모두들 「반(反)이회창」 정서에 바탕한 정치적 입지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홍구고문의 경우는 기왕에 우호적 관계를 형성한 민주계와 함께 또다른 세력형성의 선봉에 설 뜻을 적극 가시화하는 중이다. 가장 어정쩡한 것은 金大中(김대중)총재의 입장이다. 김총재가 애당초 김종필총재와의 대선공조를 추진키로 한 이유도 독자집권에 확실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 크게 내키지도 않는 내각제 개헌문제에 접근하는 식의 행보를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고개를 드니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의 하나 여권이 내각제 개헌주장을 받아들이면 김종필총재는 개헌을 「약속」이 아니라 「현실」로 보장하는 여권과 손을 잡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입지는 불확실해질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여권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대두된 이후 일시적 현상인지 지속적 관계변화인지 모르나 자민련과의 공조분위기도 예전같지 않고 당내 비주류의 움직임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확실치도 않은 가상상황을 전제로 내각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분명히 할 수도 없는 게 김대중총재의 어려움이다. 물론 이같은 분석이 정국의 앞날을 예측하는 정확한 가늠자가 될 수는 없다. 이회창대표 등의 자신감이 암초에 부닥쳐 좌초될지도 알 수 없고 여권내에서 맴돌던 권력분점론이나 개헌론이 여야의 경계선을 넘어 예상밖의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한보사태 및 金賢哲(김현철)씨 문제 등 정국의 화약고가 터지는 양상에 따라서는 말 그대로 정치권의 「빅뱅」현상이 초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한가지 개헌론이든 권력분점론이든 그 실현여부와는 별도로 연말 대선의 판도를 결정짓는 변수중 중심권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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