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北 권력암투]온건파 설 땅 잃어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문철기자] 黃長燁(황장엽)노동당비서의 망명은 북한내부의 권력암투와 유관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황의 망명은 金正日(김정일)세대에 대한 혁명1세대, 군부강경파에 대한 개혁개방파 패배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내부의 권력암투를 김정일세력과 반체제세력의 대결로 보기는 어렵다. 김은 권력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데다 도전세력의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암투는 주체사상의 해석과 대남 대외정책 및 경제난 해결방법 등을 둘러싼 강경파와 온건파의 노선투쟁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황을 포함한 온건파는 현재 노선으로는 체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개혁을 주장했을 것이고 김정일을 비롯한 당중심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황은 결국 「종파분자」로 몰렸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황은 지난해 11월의 서신들에서 북한당국으로부터 사상비판을 받았으며 집중적인 감시를 받았다고 언급,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북한내부의 노선대결은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감지돼 왔다. 군부강경파는 지난 95년 2차 북경쌀회담 당시 북한측대표들이 보장했던 우성호선원 송환을 뒤집었고 北―美(북―미)연락사무소 개설협상에서도 판문점을 통한 외교행낭전달을 거부, 온건파의 발목을 잡았다. 강경파는 지난해 나진 선봉 국제투자포럼 당시에도 한국측의 참가를 막았고 동해안 잠수함침투사건도 일으켰다. 金英春(김영춘·군총참모장) 趙明祿(조명록·군총정치국장) 등 군부강경파는 張成澤(장성택·당제1부부장) 金基南(김기남·당선전비서) 桂應泰(계응태·당공안비서) 등 김정일 또래의 신진실세들과 결합, 김정일체제를 이끄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金日成(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세대의 신진이데올로기 주창자들은 황장엽 등 김일성시대를 뒷받침해온 이론가들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해왔다. 이들의 공격이 지난해중반 노동당이론지 「근로자」를 통한 황장엽비판으로 처음 가시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50여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공식활동에서 군부강경파와 신진실세들은 자주 모습을 보였으나 황은 불과 두세차례만 김을 수행했다는 사실도 권력핵심에서 황이 점차 소외돼 왔음을 시사한다. 이런 소외감이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 자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과 합쳐져 망명을 결심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황은 작년 11월의 서신에서 『나와 같은 요직에 있다 물러나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상례』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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