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광풍/위기의 金정권]「초라한 문민」입이 열개라도…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3분


[김동철기자]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거의 회복불능의 난조(亂調)에 빠져들고 있다. 집권초기부터 김대통령이 가장 자신있게 내세웠던 정치적 덕목은 「도덕성」이었다. 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나는 기업인으로부터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점심식사도 칼국수면 족하다』는 말로 금욕(禁慾)과 청렴(淸廉)을 과시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랜 야당생활에 따른 국정운영 미숙에 대한 불안이 없지 않았으나 김대통령 스스로 다짐하는 「도덕정치」와 「개혁의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크게 지지했다. 그러나 길게는 20여년, 짧게는 10여년간 자신을 측근에서 보좌했고 스스로 국정운영의 핵심요직에 앉힌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김대통령은 더이상 도덕정치와 개혁을 입에 올리기 어렵게 됐다. 사실 현 집권세력의 「마구잡이」식 이권개입 등 비리와 부패상은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돼 여러차례 정치문제화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정권의 핵심세력들은 『문민정부아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개혁을 저해하는 수구세력의 음해다』 『증거를 대라』며 눈을 부릅뜨고 반박했다. 하지만 모두가 적반하장(賊反荷杖)격 억지요 허구에 찬 억설이었음이 이번 한보사태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덕성」이라는 유일한 울타리가 무너진데다 『모두가 네탓』이라는 「무책임」의 극치까지 노정(露呈)돼 현정권의 국정수행능력은 완전히 벼랑끝에 서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임기말 권력누수현상(레임덕)이 더욱 가속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벌써부터 차기정권을 향한 「줄서기」가 시작됐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김대통령이 불과 한달전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차기대통령후보 지명의지도 어떻게 귀결될지 불투명하다. 신한국당내에서는 이미 『차기 정권경쟁에서 김대통령이 손을 떼야 유리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정면돌파의 명수(名手)」로 정평이 난 김대통령이지만 현사태를 수습할 방안 모색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김대통령의 측근들은 물론 지금도 「정면돌파론」을 강조한다. 그들은 『대형비리사건이 생길 때마다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사건 축소를 시도했던 과거정권과 김대통령은 다르다』고 말한다.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총재 등 야권의 대선후보들도 차제에 청산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수습의 내용을 「정면돌파」라고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우회돌파」 시도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대통령이 현정권의 창출세력이자 자신의 정치적 뿌리였던 이른바 「민주계」와 결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는 점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경쟁구도도 뒤바뀔 수밖에 없는 형편임은 물론이다. 여권내 대선주자가 李洪九(이홍구)대표 李會昌(이회창) 朴燦鍾(박찬종)고문 등 신한국당내 영입파와 李壽成(이수성)국무총리로 압축됐다는 것은 이제 정치권의 정설이 됐다. 이는 조만간 단행될 당정개편 등을 통해 가시화되겠지만 그 역시 민심수습의 본원적 처방이 되기는 힘들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대통령이 모든 것을 버리는 「사즉생(死卽生)」 식 결단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민의의 핵심은 표피를 싸바르는 외과적(外科的) 처방이 아니라 환부를 남김없이 도려내는 내과적(內科的)처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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