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강렬한 모성본능이 내 존재를 압도했다.
난 그날까지 그분 일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왔다. 어떤 간섭의 말도 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분에 대한 내 원칙이고 신뢰였다.
그러나 이제 그 원칙은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나라와 역사에 대한 자기사명에 취해 있었다. 아내와 가족은 국가보다 우위개념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겐 달랐다. 나에겐 무엇보다도 가족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소중했다.
온가족이 무조건 살아서 평화롭게 손을 잡고 청와대를 걸어나가는 것, 그것이 내안의 모성이 부르짖는 생존본능이고 귀소본능이었다.
무조건 살아서 평화롭게 청와대를 나와 옛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지금도 이 말을 생각하면 갑자기 겨드랑이에서 거대한 날개가 돋는 듯한 통증이 온다.
날개 속에 가족들을 품어안고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오르는 어미새의 강렬한 귀소본능이 나의 내부에서 맴돈다.
가족들로 하여금 평화롭게 청와대를 떠날 수 있게 해야하는 일은 내 몫이다. 내안의 모성은 밤새도록 내게 그렇게 외쳤다.
이튿날 난 그분께 매달렸다. 중대한 결정앞에서 그런 식으로 그 분을 대하긴 처음이었다.
『여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자가 기어코 먹지 않으려고 한다면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요. 당신의 주장이 아무리 좋고 선의로 가득차 있다해도 국민에게 강제해선 안되고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선제엔 결함이 많아도 사람들은 그걸 원해요. 난 제발 당신이 무사히 임기를 끝내고, 우리가족이 이곳을 나갈 수만 있다면 더이상 소원이 없겠어요』
얼마전 6월 초순경의 일로 기억된다.
나는 친교가 있는 여교수들로부터 많은 학생들이 대통령직선제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날 아끼는 여교수들은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고 해야할 대학생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조언해주었던 것이다.
그 조언이 그날 밤 나로 하여금 그분에게 『직선제엔 나름대로 결함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걸 원해요』라고 말하게 하고 있다.
내 간절한 호소에 그분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제 박영수비서실장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합디다』
그분이 다시 말했다.
『나라 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끼칠 일이니 나도 사심없이 결정할 생각이오』
「사심없이」 이 말이 가슴을 쳤다.
이번에도 그분은 기어코 옳은 결정을 해낼 것이라는 안도감이 왔다.
자신의 손익과 관계없이 유리함과 불리함을 계량하지 않고 순수이성으로 대할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덜컥 겁이 났다.
『그렇다면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런 후에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침묵이 잠시 우리를 감쌌다.
최고권력의 관저인 청와대라고 해도 과연 그분과 내가 그밤에 나눈 바로 그런식의 대화가 얼마나 많이 오갈 수 있었을까.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정치에선 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혁명은 실패하면 반역이 된다던 글이 생각났다. 정치가 실패하면 무엇이 되는 것일까.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우리가족이 안전하리라는 본능적일 생각을 난 했던 것 같다.
그분의 대답이 시작된다.
『필생즉사(必生卽死)요, 필사즉생(必死卽生)이오. 이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오. 살려고 부당하게 애쓰면 죽고, 죽을 힘까지 다해 순결하게 현실을 대하면 반드시 살 수 있는 것이오』
난 지금도 그날 그분이 했던 그 우렁찬 말을 잊지 못한다.
임기 8개월을 남겨놓고 찾아온 최대 위기 앞에서 그분이 했던 바로 그 말, 신앙고백같은 그 말로부터 역사적 6.29선언의 막은 오르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직선제를 하면 여당이 불리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지만 난 그 반대요. 제도가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사람만이 승자요』
그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난 직선제 후유증 때문에 신념을 갖고 반대해왔지만 국민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안 이상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오. 당신말대로 아무리 선의의 것이라도 강제해선 안되는 법이니까』
나의 다음 질문은 당돌하다.
『그럼 김대중씨도 풀어주실 건가요』
『물론 그럴 생각이오』
거침없는 대답이었다.
난 그분을 바라다 보았다. 그분은 이미 위기의 강물을 건널 자신의 태도를 결정해놓고 있었다.
『국민들은 직선제를 원하고 있소. 그것도 강렬하게. 국민이라고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직선제의 치명적인 결함들을 모를 리 없소. 그들은 나보다 더 직선제 후유증에 진저리가 나 있는지도 모르오. 그런데도 국민들은 바로 그 결함투성이의 직선제를 원하고 있소. 국민들의 이 역설적인 요청속엔 분명한 메시지가 있소. 국민들은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직선제를 요구함으로써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완전한 페어플레이가 있는 대통령선거를 갈망하는거요. 후보자에게는 완전경쟁을, 투표자에게는 완전선택이 보장되는 그런 완전선거를…』
그분이 완전선거의 이상을 말하는 그 순간 6.29는 그렇게 거침없이 역사적 막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이 굳이 결함의 부담을 끌어안으면서조차 직선제를 원하는 절실한 이유를 안 순간 그분은 기꺼이, 가차없이 자신의 태도를 수정하고 있다.
『김대중씨를 풀어주는 문제뿐 아니라 이 기회에 모든 분야에 걸쳐 풀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신중하고 과감하게 풀 생각이오』
그분에겐 결심이 곧 행동이다.
이튿날 그분은 상춘재 앞뜰로 갔다.
중대발표가 있었다. 다음주 중으로 정국이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면 대통령으로서 비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폭탄선언이었다. 선언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엄숙했다.
6.29의 공적 개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6.29순산을 위한 숨가쁜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인 선의의 연극이.
그분의 극중연기는 완벽했던 것 같다.
외면적으로 비상조치를 말하고 있는 그분 내부에 직선제 개헌의 완전 수락과 가능한 모든 민주화조치에 대한 수락이라는 그 혁명적 심정이 담겨져 있다고 예감한 사람은 없었다.
그 발표 이후 이틀동안 그분은 노대표를 만나고 있지 않았다. 숨가쁜 결정일수록 그분은 자신에게도, 노대표에게도 적어도 이틀정도의 사유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흘후인 1987년6월17일 오전10시.
그분은 집무실에서 노대표와 마주 앉았다. 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이것을 받아들여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분의 첫마디였다.
노대표는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나는 대통령후보를 사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