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설움 이제 벗어나… 은행 가는 게 두렵지 않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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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 556명 ‘눈물의 졸업식’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자신의 이름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게 된 어르신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자신의 이름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게 된 어르신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제 은행 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은행원에게 “돈을 찾고 싶은데 액수랑 이름 좀 써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역에서 몇 분 뒤에 다음 차가 오는지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안상은 할머니(70)는 2012년까지 한글도 숫자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을 받으며 달라졌다. 혼자 살게 되자 까막눈인 게 너무 불편했다. 자신이 못 배웠기에 자식들 공부는 더 열심히 시켰다. “애들 잘 키웠으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장성해 해외로 나가니 문제였다. 외로운 건 둘째 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안 할머니는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줄곧 반장을 하는 등 모범생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울평생학습축제 도전 문해 골든벨’에 참가해 10등 안에 들었다. 글씨를 배우면서 배우지 못한 걸 감추려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곤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안 할머니는 3월에 중등학력 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도 들을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도 진학해 글을 쓰고 싶다.

이매자 할머니(73)는 2013년부터 매주 화 목 금요일에 푸른어머니학교 야간반에 나갔다. 집안 살림 때문에 칠십이 넘어 겨우 시작한 공부인데도 낮에는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학교에 간다”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글을 쓰는 게 힘들다.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냥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특별반인 야간 시 쓰기반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광자 할머니(78)는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배우는 게 즐거우니 잠도 잘 자게 됐다. 한문 공부가 특히 좋아 중등과정 학생이 따곤 하는 급수도 땄다. 김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2015학년도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556명(초등 485명, 중등 71명)의 졸업식을 열었다. 졸업자 중 44.5%는 70대, 36.7%는 60대인 것을 비롯해 99%가 50∼80대다. 김 할머니는 이날 교육감 표창장도 받았다.

학력인정 문해교육은 기초학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전국 교육청 중 최초로 학력인정 문해교육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2260명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문해교육#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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