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애끊는 유언… 한일강제병합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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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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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병합 인준은 日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날 유폐하고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

동북아역사재단, 국회서 자료전시회

(위)1926년 7월 8일자 신한민보에 실린 순종 황제의 유언.(아래)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 신문. 곧 조약이 공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사진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위)1926년 7월 8일자 신한민보에 실린 순종 황제의 유언.(아래)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 신문. 곧 조약이 공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사진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일본을 가리킴)이 역신(逆臣)의 무리(이완용 등을 가리킴)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脅制)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1926년 7월 8일 미국 교민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에 보도된 순종의 유언이다. 유언이 작성된 것은 붕어 직전인 4월 26일. 한일강제병합이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 조약자료 전시회’를 마련한다. 사진자료 74점을 통해 한일강제병합이 불법적, 강제적으로 체결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東京朝日)신문 기사. 고종이 한일강제병합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허위사실과 함께 22일 일본 임시추밀원회의가 열려 조만간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 사실을 공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조선 통감이었던 데라우치는 사후 기밀 보고서에서 22일 오전까지 순종 황제 동의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조약 체결 자체가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일본 측 한일강제병합조약 재가 문건과 한국 측 칙유문도 나란히 전시된다. 한국 측 문건에는 순종 황제의 서명이 빠져 있고 문건의 이름 역시 ‘조칙’ ‘조서’가 아니라 ‘칙유(勅諭)’로 바뀌어 있다. 일왕의 서명과 어새 날인을 모두 갖춘 일본 측 문건과 대비된다. 한국에서의 조약 체결이 강제적,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02-2012-6114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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