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軍실세… ‘하나회 대부’ 불려 1973년 ‘모반사건’에 연루되며 군복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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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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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용 前수도경비사령관 별세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유명한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사진)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인 윤 전 사령관은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실장, 1963년 육군본부 관리참모부 분석과장, 1965년 육군방첩대장, 1970년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거치며 박정희 정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다.

당시 육군 내 영관급 정치장교들이 참모총장이나 4성 장군에게는 세배를 안 가도 소장인 윤 사령관에게는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세배를 간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박정희 정부의 2인자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나 김종필 국무총리가 아니라 군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윤필용 장군”이라는 말도 있었다.

특히 1973년 전두환 손영길 김복동 최성택 등 하나회 핵심이던 육사 11기생들이 장군으로 진급하자 하나회를 지원하던 윤 사령관은 ‘하나회의 대부’로 불리며 더욱 세력이 커졌다. 반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강창성 보안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은 하나회 견제세력으로 윤 사령관을 비롯해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서종철 국방부 장관 등 하나회 후원세력과 대립했다.

이 와중에 1973년 ‘윤필용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4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술을 마시던 윤 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시게 하고 후계자는 이후락 형님이 해야 한다”고 발언해 문제가 됐다. 이로 인해 윤 사령관은 육군 보통군법회의에서 8개 죄목으로 징역 15년형과 벌금 2000만 원, 추징금 59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손영길 준장 등 하나회 소속 장성 3명을 포함한 장교 13명이 횡령과 수뢰, 군무이탈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고 ‘윤필용파’로 분류된 장교 31명이 강제 예편했다. 또 24명이 인사이동 지시를 받았고 160여 명이 감시대상으로 분류됐다. 민간인으로 윤 사령관과 가깝게 지내던 김연준 당시 한양대 총장 겸 대한일보 사장이 구속됐고 육사 11기와 친하게 지내던 이원조 제일은행 차장은 해직됐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윤 전 사령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된 김성배 전 준장에 대한 재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로 결론이 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윤 전 사령관은 재심 과정에서 “나 때문에 보안사에 불려갔던 사람들이 모두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나는 쿠데타 음모를 꾸민 적이 없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재판부에 냈다.

1975년 석방된 고인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등을 지내며 말년을 조용히 보냈다. 2003년 식도암 수술을 받은 그는 두 달 전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뒤 24일 0시 15분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필순 씨(77)와 아들 윤해관 씨(거양 대표이사 사장) 등 1남 2녀, 사위 나동민(NH농협보험 사장), 조관성 씨(한인기획 사장)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15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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