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철인3종경기로 애정 담금질 이정휘-김정숙 부부

  • 입력 2003년 3월 9일 18시 28분


코멘트
수영, 사이클, 마라톤으로 이뤄진 ‘철인 3종 경기’를 함께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이정휘(왼쪽) 김정숙씨 부부. 세계 최고 철인들이 자웅을 겨루는 ‘하와이 챔피언쉽 대회’에 동반 출전하기 위해 맹훈련 중이다. -강병기기자
수영, 사이클, 마라톤으로 이뤄진 ‘철인 3종 경기’를 함께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이정휘(왼쪽) 김정숙씨 부부. 세계 최고 철인들이 자웅을 겨루는 ‘하와이 챔피언쉽 대회’에 동반 출전하기 위해 맹훈련 중이다. -강병기기자
동료들은 그들을 우스갯소리로 ‘합금(合金)부부’라고 부른다.

이정휘(李楨輝·31·바이크랜드 대리) 김정숙(金貞淑·33·일본어 강사) 부부는 모두 ‘철인(鐵人)’이다. 철인이라는 칭호는 수영(3.9㎞), 사이클(180㎞), 마라톤(42.195㎞)을 주파하는 철인3종 경기를 17시간 내에 들어올 경우에 한해 주어진다. 이들 부부는 단순한 철인 그 이상이다. 남편 이씨는 10시간53분, 아내 김씨는 11시간15분의 기록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강원 속초시에서 예비대회 성격의 단축코스인 올림픽코스에서 나란히 남녀부 우승을 차지한 뒤 연말에 결혼식을 올려 철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아내 김씨는 그해 8월에 열린 정식코스에서도 한국여성 중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역대 한국여성 최고기록을 1시간 이상 경신하는 기염도 토했다. 남편 이씨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아쉽게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원래 두 사람이 나란히 우승해 전 세계의 철인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하와이 챔피언십 출전권을 따낸 뒤 식을 올릴 계획이었는데 무산됐죠.”

멋진 결혼 이벤트에는 실패했지만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부인 김씨는 하와이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대신 남편과 함께 신혼여행지로 하와이를 다녀왔다.

철인들 사이에 부인 김씨는 독보적 존재다. 일본에서 13년간 살다가 귀국한 김씨는 97년 가을 국내 철인경기에 뛰어든 뒤 철인대회는 물론 각종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 여자부 우승을 휩쓸었다. 남편 이씨는 사이클과 산악자전거(MTB) 동호회 쪽에서 활약하다가 99년부터 철인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MTB동호회 ‘산고양이’의 훈련부장이다.

“여자 몸으로 웬만한 남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모습에 반했죠. 제가 먼저 프로포즈했다가 딱지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운동을 하자’면서 장기전을 폈죠.”

“저는 연하의 남자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당연히 거절했죠. 그렇지만 ‘기록단축을 위해 함께 운동하자’는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어요. 제 약점이 사이클이었거든요.”

두 사람의 연애담에는 단내가 물씬 난다. 매일 오전 5시 체육관에서 만나 2시간 이상 실내 사이클 타기를 했고, 저녁에도 수영을 함께 했다. 데이트는 주중에는 남산에서 달리기로, 주말이면 도로 사이클 타기나 마라톤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들에게 사랑의 밀어는 곁에서 뱉어내는 거친 숨소리였고 애정표시는 사이클 훈련 때 맞바람을 막아주거나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봐 주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1년여, 결국 김씨는 두 살 연하인 이씨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철인은 쉬면 녹이 슨다는 말이 있어요. 저희는 술자리도 피하고 주말도 꼬박 운동에 쏟아 붓습니다. 배우자 중 한쪽만 그렇게 운동에 미쳐 있다면, 다른 쪽이 좋아할 리 없을 거예요. 세상에 둘도 없는 짝을 만난 거죠.”

김씨가 지난해 자신의 기록을 1시간 이상 단축한 데에는 남편 이씨의 사이클 특훈이 단단히 한몫했다. 김씨가 몸으로 부닥치는 람보형이라면 남편 이씨는 사이클을 비롯한 각종 운동기구의 원리를 터득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맥가이버형. 사이클이라면 그저 올라타고 페달만 돌리면 된다고 생각하던 김씨는 남편을 통해 사이클의 각종 기술과 원리를 터득해 기록을 크게 단축시켰다. 반면 남편 이씨가 지난해 본경기에서 부진했던 이유는 경험 부족으로 힘의 분배에 실패했다는 것이 부인의 분석이다.

다시 하와이대회 출전 티켓을 따기 위해 새벽부터 맹훈련 중인 두 사람은 철인대회 도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무나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해낼 수는 없어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세요.”(김)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及) 수 없습니다.”(이)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