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운동 김민수前서울대교수 "대학공정성이 재임용제 핵심"

  • 입력 1999년 11월 21일 18시 01분


《‘연구실적미달’을 이유로 지난해 8월 서울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김민수 전교수(당시 미대 디자인학부 조교수)의 복직 문제가 대학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대의 ‘김민수교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이 대학 교수 314명의 서명을 공개하며 대학당국의 납득할만한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서울대와 김씨 개인의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 대학과 학계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측면이 강하다. 김씨와 대책위의 입장, 대학측 입장을 소개한다.》

―서울대 인사위원회의 재임용 불가 결정 사유는 ‘연구실적미달’로 돼있는데….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에서 저술상을 받은 저서 (‘21세기 디자인문화 탐사’)도 있고, ‘학제간 연구분야의 탁월한 성과’로 인정받아 세계유수의 디자인 관련 국제학술지 ‘비저블 랭귀지’에 게재키로 돼 있는 논문 (‘시각 예술의 측면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 도 있는데 ‘연구실적미비’라고 판정할 수 있습니까. 심사대상이 된 97년도 연구실적의 양만 봐도 디자인학부 소속 교수 중 최고입니다.”

―재임용 탈락의 실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디자인 비평이란 디자인을 칭찬해 장사나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문화적으로 정의하고 디자인의 공공적 가치를 논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비평하는 것이 기존 디자인 시장의 먹이사슬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미술계의 비합리적 관행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여 온 데다가 96년 학술대회에서 서울대 미대 초기 교수들의 친일행적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교수 복직운동의 하나로 동료교수들이 서울대 내에서 릴레이식 연대강좌를 하고 있는데….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는 식이 아니라 학구적이고 진지한 방식으로 의시표시를 하자는 대책위의 의견에 따른 것입니다. ‘디자인과 생활’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교수 13명이 저와 함께 강의에 참여하는 교과 외의 강좌인데 총학생회와 학생비상대책위에서 시간표를 짜고 홈페이지에서 수강신청을 받아 9월1일 시작했습니다. 110명이 수강 중이고 12월1일 종강합니다.”

―재임용거부처분취소 행정소송을 냈는데, 학술적 평가의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도 있습니다.

“소송은 인사위 구성의 투명성, 규정에도 없는 예비심사위의 개입 등 연구실적 평가와 재임용 절차운용의 자의성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인사위의 평가 공정성이 문제의 핵심인데다 이의신청과 재심 등의 절차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백명의 동료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단지 저 하나 복직시키기위해서가아니라대학내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가서라도 이 문제를 대학개혁의 이슈로 삼자는 것이 저와 동료교수들의 생각입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복지대책위 움직임▼

올 5월 구성됐으며 그간 공청회, 동료교수들의 연대강좌, 서명운동 등을 해 왔다. 서울대의 안병직(경제학부), 김진균(사회학과), 이종흔(구강생리학과), 장회익(물리학과), 최종태(경영학과)교수 등 5명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추진위원에는 강명구(언론정보학과), 김상환(철학과), 소광섭(물리교육학과), 오종환(미학과), 최갑수(서양사학과) 등 33명의 교수가 참가했다. 김씨는 미대 조교수였지만 대책위에는 다양한 학과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책위는 김교수의 복직을 촉구하며 네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심사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김교수의 논문과 연구능력은 국내외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서울대에서 이제까지 연구실적물의 요건을 충족시킨 재임용대상자 가운데 탈락한 경우는 없었다. 셋째, 재임용 절차와 제도에 문제가 있다. 넷째, 300명 이상의 교수가 김교수의 복직촉구 서명에 참여했다.

▼서울대 입장▼

서울대 교무처 인사담당자는 최근 “소송 중인 사건이므로 기다려 봐야 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기자는 대학본부측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교무처장과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대 미대 인사위원회는 지난해 7월3일 김교수의 재임용심사에서 ‘연구실적미달’판정을 내렸다. 대학본부 인사위는 이에 재심을 요청했고 미대인사위는 연구실적미달 판정을 재확인하되 과거 실적 및 장래 가능성을 참작해 재임용 추천을 결정했다. 그러나 대학본부 인사위는 8월31일 ‘연구실적미달’판정을 근거로 재임용에서 최종 탈락시켰다.

미대의 양승춘 디자인학부장은 “‘연구실적미달’이라는 처음 판정에는 변함이 없지만 단과대 인사위원회에서는 재심을 통해 김교수의 과거 연구실적과 미래의 가능성 등을 참작해 재임용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양부장은 “실적평가내용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실적미달’의 구체적 이유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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