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이회창 승리의 숨은 주역들]김윤환씨 「1등공신」

  • 입력 1997년 7월 21일 21시 33분


신한국당 李會昌후보의 21일 승리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지난해 1월 신한국당에 입당한 李후보가 불과 1년 6개월여만에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기 까지는 수많은 주역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인게 사실이다. 우선 李후보 승리의 「1등 공신」으로는 金潤煥고문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일찌감치 「영남후보배제론」으로 분위기를 잡은데 이어 민정계대표인 虛舟(金고문 아호)의 조직이 이렇다할 당내 기반이 없던 李후보에게 많은 힘이 됐다는 것이다. 梁正圭.金鍾河부위원장과 金泰鎬조직1, 姜在涉홍보위원장, 尹源重상황실장등 李후보 경선대책위원회의 핵심간부들이 모두 「허주맨」이라는 점에서도 이런 사실은 뒷받침된다. 「허주맨」들은 대의원과의 직접접촉에 약하다는 평을 듣던 李후보 진영의 약점을 극복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특히 선거전문가인 尹실장의 경우 전국 대의원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분석, 평가하는 「노하우」로 전략수립의 기초를 제시했으며 姜위원장은 돌출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5년전 경험 등을 되살려 위기관리에 조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후보 승리의 또다른 주역은 李후보가 대표로 취임, 대세몰이에 나서기 전인 당고문시절부터 그를 도와온 이른바 「9인회의」멤버들. 黃榮夏전총무처장관 柳瓊賢전민주평통사무총장 李興柱전총리비서실장 房錫炫교수 安東壹변호사 陳永변호사 黃祐呂의원 高興吉특보 陳京鐸특보 등이 바로 그들이다. 黃전장관은 자금, 柳전총장은 조직, 李전실장은 총괄업무를 담당하며 李후보의 경선대책을 지원했다. 또 高특보는 한때 李후보에 비우호적이던 언론의 분위기를 바로잡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陳특보는 중앙위산하 17개 분과위원장 전원을 李후보 지지로 이끌어내는 등 중앙당을 「장악」하는데 기여했다. 房교수와 安,陳변호사는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 등 주로 정책분야와 이미지 개선분야에서 李후보를 도왔다. 「9인회의」멤버들은 특히 李후보가 한보사태 및 대선자금 처리방향, 金泳三대통령과의 관계, 대표직 사퇴문제 등 그때그때 발생하는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데 결정적 건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3월 李후보가 당대표에 취임하기 전까지 경선준비를 총괄했던 白南治 金榮馹 徐相穆 邊精一 河舜鳳 安商守 朴成範 黃祐呂의원 등 이른바 「원내 8인회의」 멤버들도 중요한 공신들이다. 이들은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짧아 원내사정에 밝지 않은 李후보와 지구당위원장 및 대의원들을 연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대표취임이후 임명된 朴世煥 安商守 金文洙 黃祐呂 申榮均 洪準杓 林鎭出 洪文鐘의원과 孔千燮 崔文休위원장 등 특보단 멤버들도 분야별 정책을 제시하고 당내지지기반을 확산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밖에 張다사로보좌관과 具凡會 尹昶重부대변인 등 실무진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李후보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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