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외압 의혹 더 키운 노만석의 ‘비겁한 침묵’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7일 23시 21분


이례적 발탁, ‘특별한 임무’ 주어졌을까
‘금요일 밤의 진실’ 언젠가 드러날 것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나는 총장도 아니고 휙 날아갈 사람인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나.” 14일 퇴임한 노만석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4개월 넘는 검찰총장 권한대행 직무 수행 중에 이런 얘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검찰 수뇌부를 향해 불만이 제기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자신은 총장이 아니라는 걸 핑계 삼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 전 차장은 검찰청 폐지 등 여권의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검찰의 임시 수장이라는 무게를 회피하려고 하는 노 전 차장을 중심으로 검찰이 하나로 뭉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첫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인 올 7월 4일 자로 단행했는데, 당시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이던 노 전 차장의 대검 차장 발탁은 의외였다. 우선 정권 교체 직후 직전 총장의 참모를 검찰의 새 수장으로 발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내란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석방 조치에도 이례적으로 불복 조치를 하지 않은 전임 검찰총장의 참모였다. 노 전 차장이 당시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법무부 설명대로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법무행정을 실현할’ 인사에 노 전 차장이 어떤 경위로 포함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 전 차장과 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 전현직 검사들의 노 전 차장에 대한 평가였다. 노 전 차장이 언젠가 차기 총장이 될 수 있다거나, 총장 임명 없이 노 전 차장이 계속 총장 대행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에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갈 리더십도, 경험도 없다”며 대부분 부정적으로 답했다. “다른 유력 후보군을 제치고 노 전 차장이 발탁된 배경엔 정권 핵심 인사가 있다”는 말도 그즈음 나왔다. 준비되어 있는지, 감당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한 자리는 사양하는 것이 최우선 방책이지만 노 전 차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발탁 인사에 따른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검찰총장은 수사나 공소 유지 등 모든 검찰 사무를 총괄하고, 전체 검찰 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당연히 대장동 일당에 대한 항소 여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총장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노 전 차장은 항소 데드라인 마지막 날 밤에 갑자기 항소 승인을 불승인으로 바꿨다. 대검 참모들에게 “검찰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용산, 법무부와의 관계를 따라야 했다”고 설명했다는데, 그 자체가 충격적이다. 검찰 수장의 의사 결정에 검찰 외부 요인이 있었다고 실토한 것이자 듣기에 따라 사건 처분을 검찰개혁 등의 이슈들과 거래한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전임보다 못한 리더가 계속 나오는 조직이 몰락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전전(前前) 총장은 소금 같은 검찰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의혹투성이 영부인을 불기소했다. 전(前) 총장은 총장 출신 대통령에게 석방 특혜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그 뒤의 총장 대행은 기본적인 책임감조차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검찰청 폐지가 100% 총장 탓은 아니었더라도, 만약 검찰 수장들이 그 순간에 정반대 선택을 했다면 검찰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노 전 차장은 퇴임식 때 구체적인 설명을 하겠다고 했는데, 항소 포기 경위에 대해 침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팩트만 하더라도 검찰 외부의 간섭 의혹이 있었고, 그건 언젠가의 문제일 뿐 진상 규명 없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사안이 됐다. 이럴 때 침묵하는 것은 외압 의혹을 더 키울 뿐 아니라 노 전 차장에게도 가장 위험하고 비겁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오늘과 내일.정원수#노만석#검찰총장 권한대행#윤석열#검찰개혁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