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체험’, 참 따스했던 동전[생사의 사이에서/김선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2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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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성북동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서른한 살, 세상으로 나왔다. 20대를 수사(修士)로 살았다. 그 기억은 50대를 바라보는 지금도 추억 이상으로 영향을 준다.

김선호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자
김선호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자
1994년 3월 말(성금요일), 예수 죽음을 기억하는 날, 성북동 수도원에 찬 바람이 불었다. 아침 미사 후 원장신부는 형제들에게 따뜻한(?) 축복을 해주었다.

“오늘은 모두 밖으로 나가세요.”

거리에서 굶든지 빌어먹든지 알아서 해결하라는 축복 속에 수사 형제들이 머뭇거리며 쫓겨났다. 나는 신문지를 태워 얼굴과 손에 대충 문지르고, 노숙인 차림으로 나섰다. 곧 짜증 섞인 행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거지들이 많이 돌아다녀, 냄새나게.”

춥게 느껴지고 심장이 위축되었다. 혜화역까지 걸었다. 2번 출구 중간 층계에 엎드렸다. 고개 숙인 채 두 손만 내밀었다. 무서웠다. 누가 여기서 구걸하냐며 멱살을 잡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손바닥에 동전이 떨어졌다. 따뜻했다.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 담겨 있던 체온이 느껴졌다. 그 따뜻함을 던져준 이를 위해, 평화가 함께하기를 엎드려 기도했다. 동전이 쌓여갔다. 지폐를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무릎도 시리고, 궁금했다. ‘얼마 모였을까?’ 일어났다. 마로니에공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어 보았다. 1만6050원. 두 끼를 해결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혜화동 로터리, 한 분식집으로 향했다. 고개 숙인 채 유리문을 여는데, 열리지 않았다. 식당 안에서 아주머님이 문고리를 잡은 채 버티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지저분한 노숙인을 선뜻 식당 안으로 받아줄 거라 기대한 내가 철부지 같았다. 몇 군데 더 들렀지만, 재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손짓만으로 나가라 해준 음식점 주인은 그나마 고마웠다. ‘돈이 있어도 사 먹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한 정거장 떨어진 삼선교 역으로 갔다. 다시 지하철 층계에 엎드렸다.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동전 주는 이도 없었다. 일어서려는데, 귓가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거지 있어.” “불쌍하다.” 두 아이가 내 앞에 멈췄다. 가방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전들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동전을 모두 쏟고는 가버렸다. 그 동전을 바라보는데, 진짜 거지가 된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구걸한 동전은 내 몫이 아니었다. 가난한 이를 위한 돈이었다. 난 하루 거지 체험 중인 젊은 수사였을 뿐이었다. 그 돈으로 무언가 사 먹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나는 돌아갈 수도원이 있었다. 이 돈으로 뭔가 사 먹는다면, 용돈을 다 털어 나눠준 아이들에게 사기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저녁 수도원으로 복귀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성금함에 동전을 쏟아부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날 내게 정신 차리게 해준 작은 천사들이 지금은 30대 성인이 되어 있겠지. 그 따뜻한 오누이에게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해 본다.


김선호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자
#생사의 사이에서#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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