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빼고 산업용만 올린 전기료… 미룰수록 문제 커질 뿐 [사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8일 23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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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주로 쓰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평균 10.6원 오른다. 가정용과 소상공인용 요금,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료는 현 수준에서 동결됐다. 당정은 4분기 전기요금 결정을 한 달 넘게 미룬 끝에 일부 산업용 요금만 이처럼 인상하기로 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 가계와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부담을 고려한 조치라지만, 많은 유권자가 사용하는 전기료 인상은 외면했다는 점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번에 인상된 산업용 전기를 쓰는 사용자는 전체의 0.2% 수준이다. 산업계에서는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인데 기업들 팔만 비트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요금 인상에 따라 중견기업은 월평균 사용량 기준으로 월 200만 원, 대기업은 3억 원 안팎의 전기료를 더 내야 한다.

이번 산업용 전기료 인상으로 한국전력은 연간 3조 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탓에 생긴 47조 원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전은 4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25.9원 인상해야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봤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 200조 원대 빚더미에 앉은 한전은 회사채를 찍어 ‘빚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내년부터 한전채 발행 규모가 법정 한도에 걸려 부도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한전이 송·배전망 같은 전력 인프라 투자까지 줄이고 있어 전력산업 생태계도 위협받고 있다.

한전은 앞서 내놓은 25조 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책에 이어 어제 부동산 자산 및 자회사 지분 매각, 인력 2000여 명 감축 등을 담은 추가 자구안을 발표했다.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자구안 이행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전의 자구 노력도 원가와 수요를 기반으로 한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기료 정상화가 늦춰질수록 공기업 한전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져 국민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 요금’이 된 전기료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요금 결정을 독립기구에 맡기는 등의 실질적 조치가 더 시급해졌다.
#산업용 전기요금#전기료 인상#정치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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