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보수 정당이 경기도에 불 지른 ‘욕망의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8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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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2기 같은 윤석열 정부-여당
2008년 총선처럼 집값 상승 욕망 자극
국가경영 전략도, 공부도 없는 집권세력
이제라도 영끌해 수도권 집 사란 말인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너무 솔직한 것도 병이다. 경기 김포, 하남, 광명 등을 서울에 편입시키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에 승리를 안겨준 뉴타운 공약과 똑같다고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치른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힘)은 ‘헌 집 주면 새집 받는다’는 뉴타운 개발을 내걸어 서울에서 압승했다. 그때처럼 이번엔 경기 주민들의 집값 상승 욕망을 자극해 내년 총선에서 재미 보겠다는 속셈을 털어놓은 거다.

심지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당의 총선 전략을 거들고 나섰다. 8일 친윤(친윤석열)계 단체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초청 강사로 나와선 김포시 서울 편입에 대해 “장점으로는 재산 가치가 증식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알게 된 사실은 마셔버린 물 같아서 다시 몰라질 수가 없다.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데 국가 운영이나 발전에 대한 비전도, 공부도 없는 정부여당이 국민을 그저 천박한 욕망 덩어리처럼 대하는 듯해 답답하고 참담하다.

15년 전 여당이 “우리도 강남처럼 살고 싶다”는 강북 주민들의 욕망을 자극해 서울 48곳 중 40석을 차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제는 그 뒤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뉴타운 지정설만 나와도 땅값이 뛰어 ‘뉴타운 로또’라고 했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온갖 분란이 벌어졌다. 2011년 11월 취임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내가 대머리가 된다면 뉴타운 때문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물론 더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을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부라면 뉴타운 지정에 앞서 투기 대책, 저소득층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출범부터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정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MB정부는 한남 뉴타운 등이 웅장하게 들어선 지금도 반(反)서민적, 부동산 투기조장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유독 MB 때 인사들을 기용해 MB 2기라는 소리를 듣는 윤석열 정부다. 부동산 정책도 규제 대폭 완화, 건설업체 연쇄 부도 막기 등 MB정부 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이젠 ‘뉴시티’까지 제2의 뉴타운이다. 그래도 MB 때는 강북을 강남처럼 개발한다는 선의라도 있었다. 국힘이 “김포를 발전시키겠다”도 아니고 “편입되면 집값 오른다”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건 책임 있는 정치라고 할 수 없다.

김기현 대표는 “수도권이라는 운동장에 불합리하게 그어진 금을 합리적으로 고쳐 긋자는 것”이라고 참 쉽게 말했다. 이처럼 쉬운 정치로 지금껏 한 번도 보수정당을 찍어본 적 없는 수도권 3040세대 화이트칼라 민주당 지지층, 서울 집값 상승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서 경기로 이사 간 표심을 끌어모을 요량인 모양인데, 쉽지 않다고 본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은 집값이 뛰어도 반갑지 않은 법이다. 전·월세를 사는 사람은 더 겁난다. 2020년 총선까지만 해도 김포시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2022년 대선에서 차이가 좁혀졌고(이재명 51.1%, 윤석열 45.6%) 경기지사 선거에선 이미 역전된 상태다(김동연 47.7%, 김은혜 50.5%). 고양 남양주 하남 군포 안산 등에서도 국힘 단체장이 당선됐다. 문재인 정권 때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까지 뛰면서 정치적 불만과 불안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선 ‘화곡이 마곡 된다’는 선전에도 민주당으로 표가 넘어갔다. 그런데 서울 편입되면 김포 집값 올라 좋을 거라고? 영끌해 경기도로 전세 간 젊은층은 어쩌란 말인가? 김포 땅부자나 토호들이야 좋겠지만 자칫하면 강서구청장 선거 때처럼 경기 표심이 왼쪽으로 다시 넘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국민은 국힘의 속내를 벌써 알아버렸다. 2008년 때도 서울 유권자들 67.6%가 ‘문제 있는 공약’이라고 응답하며 여당에 표를 주기는 했다(동향과 분석). 그러나 15년 후인 지금, 나라를 책임진 집권당이 이제라도 영끌해서 집 사라며 국민을 ‘욕망의 정치’로 타락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웰빙 정당 국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를 세우고 지켰다고 자부하는 보수정당이라면, 메가시티든 뉴시티든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놓고 ‘수도권 대전략’을 내놓는 정치력을 보여야 했다. 그만한 역량이 안 된다면 김포시가 간절히 원하는 교통 문제 해결책이라도 서둘러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 앞으로 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흘러간 인물을 모시는 것도 모자라 15년 전 재미 본 선거 전략이나 내놓는 MB 2기 집권당이 안타깝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보수 정당#욕망의 정치#메가시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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