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증명하지 못하는 증명사진[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9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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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진짜 증명사진을 찾아서

이른바 아이돌 비즈니스에 정통한 사람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외모의 제약은 예전보다 덜하다고. 왜냐고? 성형 수술이 발달해서라고. 어지간한 외모는 거의 다 바꿀 수 있다고.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 성형계도 어찌 못하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머리통 크기라고. 원하는 신체 비율을 위해서는 머리통이 보통 사람보다 작아야 하는데, 머리통을 줄일 방법은 없다고. 음, 그런가.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혁신을 거듭하는 법. 언젠가는 머리통 크기마저 줄일 방법이 개발될지 모른다. 혹은 영화 ‘겟 아웃’에 나온 것처럼, 다른 머리통을 갖다 꽂을 방법이 생겨날지 모른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머리통을 바꾸기 전? 머리통을 바꾸고 난 후? 성형 전? 성형 후? 화장 전? 화장 후? 화장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할 수 있으니, 이제 화장과 변장의 경계도 희미해져 간다. 사진을 찍고 나면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진을 보정할 수도 있다. 그뿐이랴. 단순한 보정뿐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을 예측해서 보여주는 앱, 귀여운 얼굴로 바꾸어주는 앱, 다른 성별의 모습으로 교체해주는 앱도 있다. 결국 무엇이 진짜 모습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진짜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이미지에 맞추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은 다시 그 이미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컨대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원하고, 따라서 사진기 앞에서 지을 최적의 미소와 표정을 연습한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 누구도 인생의 무대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자기 침대가 무대일 뿐. 인생의 무대에 서는 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고, 찍혀서 떠돌아 다닐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이 사진을 바꿀 뿐 아니라 사진도 인간을 바꾼다. 사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으면 짓지 않았을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다.

“사진 잘 나왔어?” “응, 잘 나왔어.” 이와 같은 대화에서 “잘”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진상”을 그대로 담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진면모보다 더 잘생기게 찍혔다는 뜻일까. 아니면 특정 목적에 맞도록 찍혔다는 뜻일까. 사람들은 잘 나온 사진을 입사원서나 각종 지원서에 첨부한다. 그러나 그 첨부된 증명사진이 과연 그 사람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결국 증명사진이란 보이는 사람과 보는 사람 간의 복잡한 게임이다. 최대한 잘 보이려고 꾸미려는 노력, 그 노력의 흔적 속에서 뭔가를 파악해내려는 복잡한 동학. 그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뭔지 모를 진상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사진 보정 능력, 성형할 수 있는 재원, 화장술, 연출력 등등이 아닐까.

알퐁스 베르티용은 범죄자들의 이미지를 부위별로 나눠 아카이빙해 경찰의 검거를 돕기도 했다. 사진 출처 퍼블릭도메인리뷰
알퐁스 베르티용은 범죄자들의 이미지를 부위별로 나눠 아카이빙해 경찰의 검거를 돕기도 했다. 사진 출처 퍼블릭도메인리뷰
이처럼 사진은 진상을 은폐하거나 치장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한때 사람들은 사진의 증명력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알퐁스 베르티용(1853∼1914)의 경우를 보라. 그는 범죄자 신원 확인을 위한 체계적인 사진 아카이브를 개발했다. 상습범들의 이미지를 부위별로 나누어 아카이빙해서, 곤경에 빠진 경찰을 도왔다. 그의 범죄자 아카이빙 방식은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1883년경부터 유럽과 미국 경찰국에 널리 퍼져 나갔다. 베르티용의 부모가 통계 전문가였다고 하니 대를 이어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확증해 온 열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가명을 즐겨 썼고, 사람의 얼굴은 바뀌기 마련이라 이런 분류 작업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20세기에 들어와 얼굴 사진이 아니라 지문이 사람 판별 작업을 보완하거나 대신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현인’. 작가는 독일인의 표정을 담기 위해 생전 2500점이 넘는 인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아우구스트 잔더의 ‘현인’. 작가는 독일인의 표정을 담기 위해 생전 2500점이 넘는 인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예술가들도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통해 시대와 인간의 증인이 되려 했다. 예컨대,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독일인의 표정을 담기 위해 20세기 전반기에 2500점이 넘는 인물 사진을 남겼고, 스위스 태생의 미국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는 미국인들을 포착하기 위해 1950년대에 ‘미국인들’이라는 작업을 했고, 헬마 레르스키 역시 ‘일상의 얼굴’이란 작업을 통해 뭔가 비참함이 깃들어 있는 인물 사진들을 찍었다. 한국의 사진가 오형근의 ‘아줌마 시리즈’나 ‘여고생 시리즈’ 역시 크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가차 없이 대상을 찍어버리는 기계적 특성 때문에, 사진은 그림보다 더 진상을 혹은 진실을 잘 담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사진작가 헬마 레르스키의 유대인 병사 연작 시리즈 중 한 작품. 작가는 ‘일상의 얼굴’이란 작업을 통해 비참함이 깃든 인물 
사진들을 남겼다. 사진 보정이 발달하면서 요즘 인물 사진에서 ‘진짜 얼굴’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작가 헬마 레르스키의 유대인 병사 연작 시리즈 중 한 작품. 작가는 ‘일상의 얼굴’이란 작업을 통해 비참함이 깃든 인물 사진들을 남겼다. 사진 보정이 발달하면서 요즘 인물 사진에서 ‘진짜 얼굴’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특히 정면 사진이 그 사람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면 그가 원대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 혹은 몽상가의 자질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고개를 숙이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다거나 침울한 상태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정면 사진은 그 사람의 진면모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준다. 정면 사진에는 이처럼 진실에의 기대가 있기에, 사진 찍는 사람은 그 기대를 역이용할 수도 있다. 정면 사진만 잘 보정하면 이것이야말로 그의 진면모라고 믿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증명사진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기념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증명사진만큼 증명에 실패하는 사진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진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흐름을 순간으로 만들며, 3차원을 2차원으로 단순화해버리니까. 아니,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평론가 수전 손태그는 일찍이 스틸 사진은 결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생에서는 매 순간이 그토록 중요하지도 않고, 멈춰 서 있지도 않고, 반짝반짝하지도 않는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상의 얼굴#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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