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중국의 관계 전환점에서 열리는 G7 회의[동아시론/전재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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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단절 아닌 위험 감축의 대중정책 강조
상호불신 크지만 신데탕트 시대 열릴 수도
정교하게 변하는 국제질서 다루는 식견 필요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방 선진 부국들의 회의체인 주요 7개국(G7)의 정상회의는 세계질서의 추이를 점검하고 협력 기조를 강화하는 중요한 모임이다. 회의의 주요 의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방안, 환경, 에너지, 기후 변화 문제, 주최국 일본이 히로시마에서 상징적으로 강조하게 될 핵무기 문제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G7 국가들의 대중국 전략, 특히 유럽과 미국 간 정책 조율이 될 것이다.

서방과 중국 간의 전략적 관계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지난 수년간 미중 간 전략 경쟁은 갈등으로 치달았지만,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이러한 추이에 변화를 불러왔다. 파국을 막고 전략대화와 외교채널을 복원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올해 들어 중국의 정찰 풍선 사건이 불거지고, 예정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이 무산되면서 미중 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중국이 코로나의 빗장을 풀고, 해외 주요 인사들이 연이어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국제사회와 중국 간의 관계는 재조정 국면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중요한 당사자는 유럽 국가들이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3월 30일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 회의 연설에서 중국과의 단절(decoupling)은 불가하다고 선언했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 경제기구들은 미중의 경제 단절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급속히 감소시킬 것이라고 경계해 왔다. 전체 수출의 7%, 수입의 20%를 중국에 의존하는 EU에 배타적인 경제진영의 구축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중국의 체제적 위협은 엄존하지만, 전면적 관계 단절이 아닌 외교적, 경제적 위험 감축(de-risking)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긴밀한 대화를 통해 유럽이 생각하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4월 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양해한다는 뉘앙스를 풍겨, 미국과 EU 간 대중 정책의 편차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유럽과 갈등을 빚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유럽과 대중 정책 조율의 필요성이 배가된 것이다.

미국의 변화는 지난달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연설을 통해 표명되었다. 미국 정부는 중국과 전면적 관계 단절은 대안이 아니며, 위험 감축과 다각화가 대중전략의 핵심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건설적 관여가 중요하며, 책임 있고 건강한 경쟁을 통해 미중 관계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중국이 불공정한 경제 관행을 고치고, 다자주의 질서에 걸맞은 행동을 할 때, 자유주의 규범에 기반한 미중 관계가 복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핵심 첨단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가 유지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럽이 보여준 대중전략의 온도 차가 미국에 일정 부분 수용되어, 소위 발리 정신(Bali spirit)이 회복되고 있는 국면이다. 5월 10일,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은 빈에서 이틀에 걸쳐 8시간에 걸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사태부터 환경, 경제에 걸친 포괄적 대화를 시도했다는 백악관의 전언을 볼 때, 미중 관계는 중대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미중 전략경쟁의 와중에 신데탕트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서방 국가 회의가 될 수도 있다. 미중 간 상호 불신과 핵심 갈등의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향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중국 상무부장의 회동,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중 국방장관의 회담 등 고위급 채널이 확장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한국은 단순한 미중 관계 가정을 버리고 정교하게 변하는 국제정세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는 한국, 호주, 베트남,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코모로, 쿡제도 등 8개국이 초청되었다. G7이 배타적 이미지를 버리고 국제사회와 남반구 국가들에 메시지를 주려 한다면, 선진국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질서의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바람직한 미중 관계의 향방을 제시하고, 세계질서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과 의견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정교한 밑그림이 없다면 선진국 회의에서 한국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 등 한국에 중요한 문제가 논의될 수 있으므로 참여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역시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재조명된다는 점에서 세계질서라는 핵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식견과 시각이 필요하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g7 회의#신데탕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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