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좀먹는 ‘미세스트레스’, 다양한 관계투자로 극복해야[광화문에서/최한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3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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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1. 출근하려고 나서는데 셔츠에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갈아입느라 아침 회의에 늦었다.

#2. 팀원이 가져온 결과물이 영 시원치 않다. 일일이 표기해 돌려보내자니 직접 해치우는 게 빠르지 싶다. 막 붙잡았던 일을 밀어 놓고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다지 큰일이 아니고 즉시 해결 가능해 보이며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미세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미세(micro)하지만 그 여파만큼은 미세하지 않은,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몸과 마음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엄연한 스트레스다.

명예퇴직, 이혼이나 사별 등 주변 사람이 알 정도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위로와 지원이 잇따른다. 본인도 의식적으로 애를 쓰기 마련이다. 미세스트레스에는 속수무책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다가왔는지 분명하지 않거니와 이따위를 날려보겠다고 버둥대는 것이 유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나 자식처럼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미세스트레스는 만성이라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뇌는 미세스트레스를 위기로 인지하지 않고 별도의 에너지를 배정하지 않는다.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에 따르면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상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직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다. 얼마든지 무시해도 좋다고 판단되는 미세스트레스에는 에너지를 할당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로 분류되지도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도 얻지 못한 채 미세스트레스는 하염없이 축적된다.

성공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왔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일수록 미세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목적 지향적인 삶의 운행에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은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해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열정을 다해 스타트업을 일궈낸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정신적으로 위태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은 것이 대표적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최근 호에서 미세스트레스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세스트레스가 갖는 영향력이 크고 개인과 조직을 좀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제시된 대처법은 다음과 같다. 작지만 지속적으로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이 무엇인지 꼼꼼히 판단한다. 개인마다 건드려지는 부분이 다르므로 외부 진단보다는 스스로 짚어 보는 편이 좋다. 특정 사람과의 대화라면 해당 시간을 줄이고 특정 과정에서의 어떤 단계라면 건너뛰거나 대체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본질적으로는 관계의 그물망을 넓게 치는 방법이 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관계는 시각을 넓히고 유연성을 높인다. ‘어느 회사 누구’ 외에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늘면 특정 상황에 연연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아울러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투자를 평소에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작고 미세한 균열은 친밀한 사람을 통해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이자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고(故)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서 “당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관계에 투자해야겠다고 느낄 때까지 미룬다면 이미 너무 늦다”고 했다.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미세스트레스#리사 펠드먼 배럿#뇌과학자#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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