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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貧者의 희망 세금, 저소득층 복권 구매 더 늘었다[횡설수설/정임수]

입력 2023-03-12 21:30업데이트 2023-03-1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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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상가 앞은 일요일을 빼고 매일같이 수십, 수백 명이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대기 줄이 길 땐 아파트 단지를 에워쌀 정도라 한다. 상가 1층의 편의점이 로또 1등 당첨자를 49명이나 배출한 국내 1위 ‘로또 명당’이기 때문이다. 2002년 첫선을 보인 로또는 작년에만 5조4000억 원가량 팔렸다. 숫자 1부터 45 중 6개를 맞히는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지만, 전국의 로또 명당들은 대박의 기운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로또를 포함해 전체 복권 판매액은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처음 5조 원을 돌파했다. 주식·코인 투자 열기만큼이나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어 작년에는 6조 원도 가뿐히 넘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성인 절반 정도가 복권을 산 적 있고, 4명 중 1명은 매주 복권을 산다고 했다. 전체 성인 인구를 대입하면 600만 명 가까이가 인생 역전을 꿈꾸며 한 주도 빠짐없이 ‘행복 티켓’을 사는 데 지갑을 연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소득 하위 20%에 속한 저소득층의 월평균 복권 구매 비용이 30% 가까이 급증했다. 상위 20% 고소득층의 복권 구매가 7%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 비교된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로 허리가 휘는 와중에도 저소득층이 복권을 사는 데 기꺼이 돈을 썼다는 얘기다. 그만큼 서민들이 기댈 데라곤 복권의 요행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권은 술·담배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잘 팔리는 불황형 상품으로 꼽히는데, 금융위기 직후에 그랬고 이번에도 속설이 입증됐다.

▷흔히 ‘빈자의 세금’, ‘희망 세금’이라고 하지만 복권만큼 손쉬운 세수 확보 수단도 없다. 정부가 헛된 희망을 부추겨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복권 당첨금은 기타소득으로 잡혀 5만 원이 넘으면 22%를, 3억 원을 초과하면 33%를 세금으로 거둬 간다. 당첨금을 지급하는 NH농협은행 복권 담당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 놈의 세금을 이렇게 많이 떼느냐”는 것이다. 당첨금이 20억 원이라면 실제 통장에 찍히는 돈은 13억7300만 원 정도다.

▷복권 판매액의 절반은 당첨금으로 나가고, 40% 정도는 복권기금으로 적립돼 취약계층 복지 사업 등에 쓰인다. 그래서 혹자는 당첨되면 큰돈이 생겨서 좋지만 당첨이 안 되더라도 생활 속 작은 기부를 실천한 셈 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일자리는 위태로워진 서민들이 지갑 속 로또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현실은 위태롭다. 복권이 희망인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횡설수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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