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를 가로막는 블랙홀은?[기고/이상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시끄러움 속에서 자율과 다양성이 꽃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 상황은 단순한 갈등과 시끄러움을 넘어서 생사를 건 싸움터로 변모하고 있다. 진영논리와 팬덤이 지배하는 정치판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를 놓고 여야 간에 사활을 건 공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국을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대립되어 있다. 첫째는 이제 대선도 끝난 마당에 ‘이재명 사법리스크’는 정치문제가 아니라 법적 책임 유무를 물어야 할 사법문제로 남아 있다고 보는 견해다. 둘째는 지금의 수사는 정부와 여당이 이 대표를 압박함으로써 지지세를 높여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정략적 포석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수사로 보는 입장이다.

검찰이 구속영장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향후 기소되어도 증거와 법리 공방으로 재판이 확정되기까지 장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끝없는 다툼 속에서 민생과 안보 등 시급한 현안은 물론이고 모처럼 불씨를 살린 선거법 개정 등 장기 계획과제도 멈출 위기에 놓여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 과정에서 민주당에서 나온 이탈표가 향후 정치의 정상 궤도를 회복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이 대표와 민주당은 보다 겸허한 자세로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불체포특권의 장막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수사에 응해야 한다. 검찰도 구속영장을 쪼개어 청구하지 말고 다른 사건과 함께 처리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여 민주당을 흔든다는 정치 개입의 의심을 주어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 정치는 병행적 사고를 발휘하여, 한쪽에서 검찰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생이나 중요 계획과제가 실행되는 투 트랙의 행보를 보여야 한다. 법이 정의를 목표로 한다면 정치는 상생을 목표로 한다. 차가운 정의의 칼로 정치를 풀려고만 해서는 안 되고 따뜻한 상생의 자세로 얼어붙은 현실을 녹여내야 한다. 사법적 정의의 측면을 뛰어넘어 균형과 상생을 위해 화해와 용서의 결단이 용인되기도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 되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 뒤주에서 곡식을 풀 때도 네모진 함박이 아니라 둥근 함박으로 푸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만 네 귀퉁이에 곡식은 남는다는 것이다. 싹싹 긁어 가고 하나도 남기지 않는 사고방식은 법에서는 몰라도 정치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치인 상당수는 기득권 집단이 되어 보수화되어 있다. 눈앞의 이익에 민감하고 자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국회 내에 새로운 중간 세력이 형성되어 강고한 프레임을 구축하고 양당의 지도부를 견인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150여 명으로 늘어난 국회 초당파 의원 모임이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그때그때 필요한 국민적 요구과제를 풀어가는 중심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1대 국회의 경우 초선 비율이 50%를 넘길 정도이다. 그들이 국회에 들어올 때의 초심을 발휘해 정치를 새로이 개혁해 나가는 데에 앞장서는 용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잘 ‘블랙홀’이라는 논리로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금 그들 스스로가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블랙홀로 만들어 이것이 다른 모든 현안을 삼켜버리게 하고 있다. 정치를 복원시켜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사법리스크라는 블랙홀을 한편으로 치워버리자.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
#민주주의#정치#블랙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