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 기억’과 ‘기억된 기억’[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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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컬렉션의 세계

기억은 선택 기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기억하는 자의 정체성과도 같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넘버 2’(왼쪽 사진)와 주재환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주재환은 정적인 누드의 전통을 비튼 뒤샹의 이 작품에 최민의 시 ‘폭포’와 오줌을 누는 이미지를 덧입혔다. 뒤샹, 최민, 주재환 작가 모두 예술을 통해 기성 질서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기억은 선택 기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기억하는 자의 정체성과도 같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넘버 2’(왼쪽 사진)와 주재환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주재환은 정적인 누드의 전통을 비튼 뒤샹의 이 작품에 최민의 시 ‘폭포’와 오줌을 누는 이미지를 덧입혔다. 뒤샹, 최민, 주재환 작가 모두 예술을 통해 기성 질서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모든 것은 결국 흩어져 사라진다. 따라서 컬렉션은 흩어져 버리는 경향에 대한 저항이다. 모든 것을 모아둘 수는 없다. 따라서 컬렉션은 일부만 모으는 선택이다. 무엇을 모아두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선택은 필연적으로 선택 기준을 동반한다. 따라서 컬렉션은 가치의 위계를 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가치는 바로 컬렉터의 정체성이다.

인생의 기억도 자기 인생에 대한 모든 사실의 집적이 아니다. 기억은 자신이 경험한 것, 그중에서도 자신이 수집한 과거의 경험이다. 흩어져 버리고 마는 삶의 속성에 대한 저항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 것인가. 기억은 필연적으로 선택 기준을 동반한다. 자신이 수호하는 가치에 따라 기억을 선택한다. 그 가치야말로 바로 기억하는 자의 정체성이다.

인간은 대개 유용하고 행복했던 경험을 수집하기 원한다. 새로 외운 외국어 단어를 거듭 암기한다. 어머니가 남겨 준 조리법을 외운다. 행복했던 순간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 놓는다. 모든 기억이 다 행복하거나 유용한 것만은 아니다. 기억은 기억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기억된 결과이기도 하다.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마음에 틈입한 경험들은, 조용히 마음의 저변에 침전해 있다가, 특정한 계기를 만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기억한 기억이 아니라 기억된 기억은 예상치 못한 계기를 만나 산소 보급을 위해 올라오는 잠수부처럼 의식의 수면 위로 솟구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민 컬렉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반세기 전 옛 기억 파편 하나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나는 잠시 귀국해서 친구들과 함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완성되었고,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머물 명분이 없어질 무렵, 동아일보에서 신춘문예 사상 최초로 영화 평론 부문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응모해 보아야 당선되겠냐. 주변의 회의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응모했고, 당선되었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영화 평론 부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최민 선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다.

최민 선생이 초대 영상원장직을 맡고 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근처에서 만났는데, 당시 그의 눈에는 내가 상금이나 받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 버릴 청년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기왕 당선되었으니 어떻게든 글을 계속 쓰라고 내게 거듭 당부했다. 물론 나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야 학위 과정도 끝낼 수 있었고,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으니까. 따라서 한국의 개봉작을 보고 영화평을 써야 하는 일도 할 수 없었고, 생애 최초의 잡지 인터뷰 제안에도 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반세기가 지나, 당시 신춘문예를 주관했던 동아일보의 지면에 이미지를 다룬 글을 기고하고 있으니, 최민 선생의 당부에 부응한 셈이 되었다.

최민 선생은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기도 했고, 미술평론가이기도 했고,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번역한 사람이기도 했고,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최민 컬렉션 중 이러한 다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라는 작품이다.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호민과 재환’전 이래, 어쩌면 주재환은 민중미술가라기보다는 만화가 주호민의 아버지로 더 유명할지 모른다.

최민 선생의 시 중에 ‘작은 폭포가 올라간다/작은 폭포가 올라간다/좁은 벼랑을 비집고/작은 폭포가 올라간다’라고 노래하는 ‘폭포’라는 작품이 있다.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그 시의 조각조각을 계단형으로 배치하고, 그 계단 위에는 소변을 보는 남자들을 그리고, 그 오줌이 계단으로 흘러내려 오는 모습을 다소 추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단, 저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넘버 2’를 비튼 작품이다. 뒤샹의 해체적이고 동적인 작품이 인체를 미화하는 데 급급한 정적인 누드 작품 전통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면, 주재환의 작품은 거기에다 다시 친구 최민의 시를 붙이고, 그 위에 오줌을 눈 것이다. 뒤샹이나 최민이나 주재환이나 기성 질서에 대한 명시적 저항과 조롱에서 의미를 찾던 세대의 일원이다.

최민 선생은 생전에 ‘미술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글에서 ‘화가가 현실의 실상을 일체 도외시하고 오로지 그림이라는 화폭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결국 그림에 관한 그림밖에 그릴 수 없다. 이런 그림은 미술사의 형식적 문맥 속에서나 살아있을 수 있지 현실의 공기 속에서는 한순간도 견디지 못한다. 우리의 많은 작가들이 이런 그림만을 그리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3월 1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 강석호 작가의 ‘3분의 행복’전에서는 작품의 바탕이 된 이미지도 함께 볼 수 있다. 김영민 교수 제공
3월 1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 강석호 작가의 ‘3분의 행복’전에서는 작품의 바탕이 된 이미지도 함께 볼 수 있다. 김영민 교수 제공
최민 컬렉션 전시장 옆에서 작년에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계를 등진 강석호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강석호의 컬렉션을 꼼꼼히 살펴보면, 강석호는 그의 작품의 기반이 될 이미지들을 꼼꼼히 수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강석호는 현실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자기식대로 전유해서 자신의 화폭에 재현한 것이다. 어쩌면 강석호야말로, ‘오로지 그림이라는 화폭에만 집착하고’ 있으면서 ‘결국 그림에 관한 그림밖에’ 그리지 않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한 강석호의 전시 제목은 다름 아닌 ‘3분의 행복’이다. 줄기차게 이미지의 표면만을 의도적으로 훑는 그의 작품들은 어떤 변혁의 전망도 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3초나마 행복해진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기억#컬렉션#과거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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