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통화정책부 장관’과 ‘금리감독원 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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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시장 불안은 당국의 관리 실패
금리 개입, 또 다른 실패 경계해야

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공식석상에서 말을 아끼던 역대 총재와 다르다. 통화정책 고려 요인으로 환율 안정, 부동산 시장 연착륙 등 정부가 신경 쓰는 거시경제 변수를 언급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브리핑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이 그에게 쏟아진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 경제 관료들과도 말이 통한다. 한은 안팎에선 그런 그를 두고 “중앙은행 총재보다 ‘통화정책부 장관’ 같다”고 말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요즘 은행가에서 ‘금리위원장’ ‘금리감독원장’으로 불린다. 시중금리 개입성 발언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을 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이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수신 경쟁 자제를 주문했다. 다음 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해 달라”고 했다. 당국의 잇단 경고 이후 시중은행에서 5%대 정기예금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졌다.

금융거래의 기본인 기준금리는 1년에 8번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단기금리-장기금리-예금, 대출금리’가 오르고 시중에 풀린 통화량이 줄어 과열된 경기가 진정되는 효과가 생긴다. 한데 금융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면 한은이 금리를 올려도 시중금리가 내리고 통화정책 경로가 뒤틀린다.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상승을 억제하고 은행권으로 돈이 쏠리는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항변하나 금리 상승과 자금 쏠림 현상이 순전히 시장 탓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영향을 준 책’으로 꼽은 ‘선택의 자유’를 저술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경고처럼 시장 실패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가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인위적 제약(정부 실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11월까지 석 달간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100조 원 가까운 돈이 몰린 건 한은이 뒤늦게 금리를 급하게 끌어올린 책임이 크다. 한은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6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7월과 10월엔 두 차례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기업 자금시장 경색은 당국 책임이 무겁다. 채권시장에선 공공채, 은행채, 우량 회사채 등의 순으로 소화된다. 지난 정부에서 전기요금을 묶어두는 바람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이 한전채를 대거 찍어내고 당국이 요구한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에 나서는 바람에 기업에 돌아갈 자금이 바싹 말랐다. 10월 터진 강원도발 레고랜드 사태는 강풍이 불고 건조한 들판에 성냥불을 던진 격이었다. 한전 관계자들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한전채 발행이 늘어 민간기업이 자금난을 겪게 된다”고 경고했지만 정부도, 국회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자금을 빨아들이는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하자, 은행들은 자금 확보를 위해 예금 확보 경쟁에 들어갔다. 당연히 은행 조달 비용이 오르고 대출 금리까지 들썩였다. 당국은 결국 예금 금리까지 건드리게 됐다. 그러는 사이 금융 시스템의 중추인 은행의 건전성 지표(자본 비율)는 하락하고 있다.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통화정책부’니 ‘금리감독원’이니 하는 엉뚱한 얘긴 나오지 않는다. 프리드먼은 시장 실패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 개입에 대해 “치료제가 질병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국이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잘못이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통화정책부 장관#금리감독원 원장#자금시장 불안#당국의 관리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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