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더 악랄해진 제2의 ‘n번방’… 검거 서둘러 추가 피해 막으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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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메신저에서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엘’(가칭)이라는 범행 주도자 외에 최소 8명이 이 범죄의 공범으로 가담했고, 성 착취 동영상이나 사진은 확인된 것만 350개가 넘는다. 2019년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n번방 사건’에 이어 3년 만에 유사 범죄가 다시 벌어진 것이다.

엘과 공범들의 수법은 n번방 사건 때보다 더 은밀하고 악랄해졌다. 고정 채팅창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됐던 n번방과 달리 이번 사건의 범죄자들은 계정을 바꾸거나 수시로 방을 이동하는 수법으로 감시망을 피해 다녔다.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교묘해졌다. 엘은 디지털 성범죄를 파헤쳤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한 뒤 수사 미끼로 써야 한다며 성 착취물을 강제로 촬영하게 협박했다. 피해자들 상당수는 10대로, 초등학생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경찰이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지만 진척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성 착취물 공유에 이용돼온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의 해외 서버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아 유포자들의 신원 확인부터 막힌 상태다. 현재까지 금전거래 내역이 발견되지 않아 금융거래망을 이용한 추적도 불가능하다. 그러는 사이 채팅방 운영자들은 경찰을 조롱하듯 성범죄물을 계속 퍼뜨리고 있다.

경찰은 n번방 사건 당시 수사 노하우를 쌓고도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일선 경찰서에 신고했으나 유포 정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8개월간 사이버범죄 전담팀에 이관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늑장 대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찰은 성범죄자 검거를 서둘러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는 추가 피해부터 막아야 한다. 디지털 범죄의 특성에 맞춰 범죄 감지 단계에서부터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뒷받침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의 호소와 외침이 터져 나온 뒤에야 따라붙는 수사 속도로는 음습한 온라인 공간에서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디지털 성범죄를 막을 수 없다.
#제2의 n번방#검거#추가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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