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전 확보에 ‘조용한 외교’란 없다[특파원칼럼/김기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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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한국인 격리시설 보내져도 우리 정부 몰라
백신 교차접종 우려 많은데도 교민안전 대책 없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외국에서 한국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돼 ‘강제로’ 시설에 보내졌다면 이 사실을 현지 한국대사관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될까.

얼마 전 중국에 입국해 격리 중이던 한국인 여성 A 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국을 출발할 때는 음성이었지만 중국 도착 후 하루 만에 양성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 방역 당국은 A 씨를 격리 호텔에서 빼내 별도의 장소로 이동시켰다.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는 남편과 만나기 위해 뒤늦게 중국에 온 A 씨는 중국어를 전혀 못 한다. 이날 A 씨는 전신을 방호복으로 무장한 관계자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갔다”고 했다. 철저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에서 확진자는 ‘민폐 유발자’ 취급을 받는다. 중국인들이 A 씨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A 씨가 다른 시설로 옮겨진 것을 주중 한국대사관은 알지 못했다. 중국 측이 통보해 주지 않아서다. ‘영사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외국에서 한국인의 인신이 구속되면 즉시 한국 측에 알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 경우를 통상적 개념의 인신 구속이 아닌 개인의 질병 치료를 위한 병원 입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대사관도 이 같은 인식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 측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하거나 적극적으로 정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한국대사관 측은 “A 씨가 대사관에 직접 알렸다면 적극적으로 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최근 중국 베이징시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특정 장소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사실상 ‘백신 강제 접종 방침’을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외국산 백신 접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백신 접종을 인정받으려면 중국산 백신을 맞아야 한다. 한국에서 화이자나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외국산 백신을 맞고 중국에 왔더라도 다시 중국산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외국산과 중국산 백신 교차 접종에 대한 임상 데이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국에 있는 한국 교민들의 위기 의식은 높아져 갔다.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이 강한 데다 교차 접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교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한국 교민들이 믿을 건 한국대사관밖에 없었다. 한국대사관에는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업무를 대표해 처리하는 ‘식약관’이라는 자리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대책이나 방안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대사관 식약관은 중국의 발표만을 반복적으로 대신 전달할 뿐이었다. 다행히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됐던 베이징시의 이번 조치는 현재 흐지부지된 상태다. 아마도 다른 나라 대사관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중국에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임 대사가 물러나고 신임 대사가 아직 부임하지 못한 대사 공백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어 보인다. 한국이 ‘조용한 외교’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미중 대립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용한 외교’를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 왔다.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실제 긍정적 결과도 냈을 수 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마침 신임 정재호 대사는 평소 ‘조용한 외교’ 폐기론을 주장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코로나19#국민 안전 확보#조용한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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