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원수]대법원-헌재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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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적대적인 관계인 것처럼 일반에게 비치는 건 양자 모두에게 이롭다고 할 수 없다.” 민법학자 출신의 양창수 전 대법관은 2014년 퇴임식 때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 얘기를 꺼냈다. 그는 “두 기관의 관계는 호양(互讓·서로 양보함)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관계를 벗어났다”면서 국회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헌재가 일부 위헌 취지의 헌재 판단을 법원이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의 뇌물죄 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헌재의 대법원 판결 취소는 1997년 이후 25년 만이다. 대법원은 6일 입장문을 내 “법률의 해석과 적용 권한은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 기관이 간섭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권력 분립 구조의 기본 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을 근거로 헌재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1988년 설립 당시 헌재 위상은 대법원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설립 2년 만에 헌재가 법무사 시험을 규제하는 대법원 규칙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선고 연기 요청을 헌재가 거부하자 대법원은 “재판관 대부분이 과거 법관 시절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고,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며 헌재의 실력을 폄훼했다. 헌재도 “수십 년간 정권 눈치나 봐 온 사람들이, 대법원이 국민 기본권을 보호한 적이 있느냐”고 맞섰다. 위헌심사권이 헌재에 있다는 걸 알린 계기였다.

▷헌재는 처음엔 위헌과 합헌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1년 독일 헌재처럼 ‘법조문을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식의 다양한 결정 방식을 도입했다. 독일은 한국처럼 대법원과 헌재가 있다. 대법원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재판이 위헌 소송 대상이 아닌데도 이런 결정을 하는 건 재판권 침해”라고 반격했다. 1996년 헌재의 법률 해석에 대한 견해는 대법원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듬해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하는 첫 결정을 했다. 2003, 2009, 2012, 2016년에도 유사한 공방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컸을 때 헌재가 생겼다. 헌재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맡게 된 것도 있지만 기본권 보호에 앞장서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더 선호하던 관행이 바뀔 정도로 이제는 양측이 대등한 관계가 됐다. 최고 법률기관의 자존심 싸움에 기본권을 구제받아야 하는 국민들만 양 기관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공방을 언제까지 할 건가.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대법원#헌법재판소#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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