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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무비줌인]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는 자, 영웅이다

입력 2022-03-11 03:00업데이트 2022-03-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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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시리즈로 잘 알려진 명감독 맷 리브스는 신작 ‘더 배트맨’에서 히어로로 활동한 지 2년 차인 미완성 배트맨을 다룬다. 이전 시리즈들에서 악당보다 존재감이 약했던 배트맨이 이번 작품에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창조됐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배트맨은 괴상한 복장 취향을 지닌 재벌이 거친 세상 풍파에 뒤틀린 못난이(빌런)들을 쥐어 패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최근 개봉한 새 시리즈 신작 ‘더 배트맨’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배트맨은 아무리 악인이라고 한들 가죽 장갑 끼고 직접 ‘빠따’를 쳐선 안 된다는 시민사회 합의를 무너뜨리는 존재다. 게다가 존재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극한의 ‘관종’이라 서로 통하는 게 있다고 믿는 악당들을 자극한다. 마스크를 쓴 악당과 배트맨은 탄생 배경이 닮았다는 시리즈의 오랜 전통 역시 이어진다. 이번 신작의 메인 악당 리들러는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행위 동기를 따지고 들어가면 뿌리 깊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리고 둘의 트라우마는 복수라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배트맨은 부유층이라는 태생과 맞물려서 시스템을 옹호하는 포지션이라는 점, 공권력을 보완할 뿐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스템에 도전하고, 때론 정치적인 비전까지 내비치는 쪽은 이 시리즈에서 악인이다. 배트맨은 승인되지만, 악인은 배제된다. 이를 거꾸로 말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 승인하는 자 영웅, 배제되는 자 악인이다.

이 강력한 보수주의 서사는 배트맨 시리즈 내내 지속된 테마다. 이는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이다. 악인들은 지상에서 저마다의 사연과 오류 속에서 뒤틀려 있으며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방편으로 범죄를 택한다. 배트맨은 가까스로 범행을 막아서지만, 공권력의 빈틈 속에서만 자신의 처지를 강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인이 양산되는 구조가 그곳에 스산하게 남겨진다.

그래도 배트맨이 해결해준다면 괜찮은 걸까. 보수주의자 배트맨이 규정하는 정의는 어떤 방식으로 검증되는가? 이러한 구조는 본질적으로 옳은가? 이와 같은 시리즈의 필연적 모순과 의문을 어떻게 응시하느냐에 따라서 배트맨은 명작이 되기도, 또는 망작이 되기도 한다.

명작으로 꼽히는 팀 버턴 감독의 ‘배트맨’(1989년)에선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인 잭 니컬슨이 악당 조커로 분했는데 장르 사상 처음으로 선역과 악역의 스포트라이트 비중을 뒤흔들면서 질문을 돌출시킨다. 또 대안 없는 잔혹 도시의 풍경을 작곡가 대니 앨프먼의 비장한 음악과 어둠의 미장센을 통해 그려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년)는 선한 의도라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아무래도 좋으냐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고 감당하는 영화다. 좋은 질문이 배트맨 시리즈의 본질임을 아는 작품들이다.

이 지점에서 ‘더 배트맨’은 명작이 되려는 야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처럼 질문하는 시간으로 영화를 꽉꽉 채우고 있다. 그것도 거의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이번 영화가 질문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표 악당 또한 수수께끼를 내는 인물 리들러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리들러의 퀴즈는 시시하지만, 배트맨의 ‘내로남불’을 질타하는 존재라서 흥미롭다. 너무도 뚜렷한 정치적 어젠다와 신념을 가진 악역 리들러는 사적 제재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데, 마땅히 처벌받았어야 할 부패한 공직자 처단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존재다. 이는 공권력의 부재 속에서 배트맨이 정의를 수행해온 방식과 정확히 동전의 양면이다.

심지어 리들러는 배트맨의 ‘본캐’인 브루스 웨인 부모의 치부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배트맨이 믿어온 보수적 도덕 기반 또한 극히 취약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부모의 죄악을 감당하라고 웨인을 몰아세우면서 그가 가진 정의감의 위선적 측면을 폭로한다. 그건 보수주의자 배트맨에게 그동안 묻지 못한 질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영화는 끊임없이 가죽 두건에 가려진 배트맨의 표정을 확대한다.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배트맨이 악당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비범한 차이가 드러난다. 바로 회의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리들러도 질문하지만, 명확한 자기 확신 속에서 정답을 쥐고 있다고 믿는 반면에 배트맨은 해답을 쥐지 못해 불안해한다. 배트맨은 불확실성 속에서 정답을 단계적으로 찾아가고 그 과정을 신뢰하는 편을 택한다. 영화가 절차적 민주주의 현장인 선거 시즌을 배경으로 다룬다는 점이 여기서 의미심장하다. 배트맨은 자신의 정체성과 태생적 한계까지 회의하고, 때론 위선처럼 보일지언정 부여받은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로써 복수라는 사적 감정을 어느 시점에는 홀연히 뛰어넘는다.

명작 다크 나이트에서 고담시 검찰 수장 하비 덴트의 말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자신을 보거나” 또한 이 지점에서 반박된다. 회의할 수 있는 능력이 영웅이냐 악당이냐를 가른다. 영웅 덴트가 더 이상 고뇌하지 않고 동전 던지기 결과에 따라 행동하기로 마음먹자 악당(투 페이스)이 된다. 영웅과 악당 차이는 한 끗이다. 더 이상 회의하지 않는 자가 악인이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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