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불가능한 도전에서 맛보는 희열[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2-02-18 03:00업데이트 2022-02-18 03:03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의 위기일까? 신입생 가운데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전공학과로 옮기는 비율이 10%에 달하고 있다. 놀란 학교 본부에서 통계를 들이밀며 학과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전통 학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사건이다. 세상이 변화무쌍한 구름처럼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만, 현실은 현실인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학회에서 해외 대학교수들을 만나면 우수한 학생들이 금융, 경영 쪽으로 전공을 바꿔 떠난다는 푸념을 듣곤 했다. 도대체 우리 학생들은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내가 물리학 공부를 시작할 때를 생각해봤다. “무슨 과예요?” “물리학과인데요” 하면 그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당시 물리학은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그 든든한 배경을 믿고 실험실에 침낭을 깔고 실험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물리학의 거창한 미래보다도 하루하루 눈앞에 보이는 실험 결과가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처럼 나를 이끌어 주던 멋진 시절이었다.

물리학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얼마 전, 유럽 공동 연구진은 영국 컬럼 유럽공동핵융합실험장치(JET·Joint European Torus)에서 5초 동안 16MW(메가와트)의 핵융합 전력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핵융합 반응로는 섭씨 1억5000만 도까지 가열된다. 얼마나 높은 온도인가? 핵융합 반응로가 정상으로 가동된다면 500MW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 에너지는 우라늄 원자가 둘로 쪼개지면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다량의 핵폐기물이 만들어진다. 핵융합 에너지는 반대다. 뜨겁게 달궈진 수소 원자핵이 헬륨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핵융합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중요한 점은 심각한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얻을 수 있는 에너지양도 많다. 핵융합은 태양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태양뿐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빛나는 별들은 핵융합을 통해 빛을 방출하고 있다. 핵융합은 우주가 선택한 에너지인 것이다.

어쩌면 핵융합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은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방법일지 모른다. 핵융합 기술을 통해 무한대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핵융합의 원료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수소다. 몇 그램의 수소가 수십만 배럴의 석유로 대체될 수 있다니, 정말 꿈같은 방법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많은 과학자가 핵융합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5초’라는 가능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전력을 얻는 시간이 앞으로 5분, 5시간, 50시간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물리학자를 기다리는 것은 낭만적인 꿈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이다. 도처에 불가능한 것투성이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 같은 실험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뀌는 시간은 순간순간 찾아온다. 그 짧은 희열의 순간이 있어 연구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이런 기쁨을 알게 되면 좋으련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