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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온난화로 강 범람’ 위기 알래스카, 마을 통째로 옮긴다

입력 2022-01-20 03:00업데이트 2022-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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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해 5월 13일 미국 알래스카주 북서부 버클랜드에 강물이 범람해 마을 주택들이 침수되고 약 400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했다. 현지 언론인 알래스카퍼블릭미디어는 “봄 기온의 상승으로 얼음이 너무 빨리 녹으면서 전례 없는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버클랜드=AP 뉴시스
유재동 뉴욕 특파원
《이달 초 미국 뉴욕 맨해튼 동쪽 이스트강 유역에 면한 스튜이타운을 찾았다. 서민 주거지로 유명한 이곳 강변에서는 굴착기를 이용한 대규모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100m가 넘는 구간에 높이 3, 4m의 하얀 콘크리트 벽이 들어서 있었다.》


현장에서 차량 통행을 관리하던 책임자는 “몇 년 전 허리케인으로 이곳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긴 적이 있다.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 곳곳에 이 공사의 명칭인 ‘동부 해안가 복원력’(ESCR·East Side Coastal Resiliency)이란 간판이 보였다.

이 공사는 이 지역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됐다. 지금은 방파제부터 먼저 세우고 있지만 앞으로 이 일대를 수변 공원으로 만들고 나무를 많이 심어 자연 배수 체계도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상기후 피해 속출

뉴욕시가 14억5000만 달러(약 1조7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 공사에 착수한 이유는 2012년 허리케인 ‘샌디’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당시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샌디의 여파로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뉴욕에서만 44명이 사망하고 190억 달러(약 22조650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향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뉴욕의 해수면은 2050년까지 67cm, 21세기 말까지 180cm 각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ESCR 사업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가 가져올 각종 피해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처럼 최근 미국에선 기후변화가 미래의 불안 요소가 아닌 당장의 현실로 다가온 상태다. 이미 지난해 12월에는 이례적인 겨울 토네이도가 켄터키, 미주리 등 중부를 강타해 수십 명이 숨졌다.

“여러분은 이제 엄밀히 말해 ‘유랑민’이 됐습니다.”

미국 최북단 알래스카주 남서쪽의 작은 마을 나파키악. 최근 워싱턴포스트(WP) 매거진에 따르면 이곳 윌리엄밀러메모리얼 학교의 샐리 베네딕트 교장은 지난해 8월 신학기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현재 학교 건물을 허물고 새 학교를 지을 때까지 가건물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근 쿠스코큄강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학생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온 탓이다.

2003년만 해도 학교는 강에서 약 250m 떨어져 있었다. 현재 학교와 강의 거리는 불과 20m. 언제라도 강물이 학교를 덮칠 수 있다. 이에 학교 측은 올봄부터 건물을 차례로 허물기로 했다. 나파키악 주민 또한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어 당국 또한 향후 50년에 걸쳐 마을 전체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철수 계획’을 짰다.

냉·온탕 날씨 반복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동쪽 이스트강 유역에서 향후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파제를 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뉴욕시는 2012년 도시 내 사망자 44명을 낸 허리케인 ‘샌디’ 이후 약 1조74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방파제 공사에 착수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알래스카의 온난화는 그야말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한때 남쪽 섬 코디액의 온도는 섭씨 20도를 기록했다. 12월 기온으로는 사상 최고치였다.

지난해 남부 텍사스주에서도 기상 관측이 시작된 후 사상 최초인 기록이 쏟아졌다. 동부 잭슨빌 지역에는 지난해 2월 눈폭풍이 몰아쳐 기온이 영하 21.1도까지 떨어졌다. 2월의 평년 기온(4.4도)보다 훨씬 낮다. 이로 인해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발생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겪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반대로 ‘따뜻한 겨울’이 찾아왔다. 당시 텍사스의 평균 기온은 15도로 1889년 이후 130여 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상 고온 때문에 주 면적의 절반 이상이 상당한 가뭄에 시달렸다. 지난해 12월 미 중부를 강타한 토네이도 역시 평년 기온을 10도 이상 웃도는 따뜻한 공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중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서부 캘리포니아주도 지난해 극심한 냉·온탕 기후를 반복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1895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겪었고, 같은 해 9월에는 대형 산불로 유명 휴양지 타호 호수의 주민 수천 명이 대피하는 혼란을 겪었다. 석 달 뒤에는 이례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국제역사기후네트워크(GHCN)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1994년 이후 가장 많은 혹서, 혹한 기록들이 미 전역에서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WP 역시 연방정부 통계를 분석해 지난해 미국인의 40%가 산불, 홍수, 허리케인, 산사태 등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 거주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기후변화 영향으로 최소 656명이 사망했으며 피해 규모 또한 1040억 달러(약 124조8000억 원)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인프라 개선도 시급

전문가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여 기후변화를 최대한 늦추는 것 못지않게 도로 수도 교량 등 기반 시설을 대폭 개선하는 작업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9월 대형 허리케인 ‘아이다’가 뉴욕, 뉴저지 등 미 북동부 주요 주를 강타하면서 40여 명이 숨졌다.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폭포수같이 쏟아지면서 아파트 지하층들이 범람한 것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루이지애나, 플로리다주 등 멕시코만 인근 남부 지역에 집중됐던 허리케인 피해가 북동부 지역까지 번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허리케인은 육지에 상륙하는 순간 그 파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다는 육지를 이동하는 중에도 고온다습한 공기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 위력을 발휘했다.

그간 허리케인 대비를 거의 하지 않았던 뉴욕은 기습적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는 1869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시간당 80mm의 장대비가 쏟아졌다. 시간당 45mm까지만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 뉴욕 하수 체계가 사실상 붕괴되면서 상당수 지하철역도 물에 잠겼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65% 감축하고 2035년까지는 자동차나 트럭 등 차량을 전면 전기차로 교체하라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도 참가국의 합의를 독려하면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3위), 러시아(4위) 등의 미온적 태도가 여전해 미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환경단체 ‘에버그린 액션’은 14일 바이든 행정부의 46개 환경 공약 이행 여부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가시적 진전을 이뤘지만 기후 위기에 대처할 만큼 빠르게 행동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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