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국책연구원을 보낸다면?[기고/박윤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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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형 순천향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박윤형 순천향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은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4곳과 과학기술부 장관이 주관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곳으로 총 49곳이다. 국책연구기관은 민간의 자체 연구개발(R&D)이 어려울 때 투자해 기반을 닦고 인력을 키워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등 개발경제시대에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연구기관에서 기술개발 역량을 키운 연구원들이 대학교수로 임용돼 대학 역량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

최근 삼성, 현대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규모 제약회사들까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어 기업 R&D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상생활에 익숙한 식품이나 생활용품도 모두 R&D의 결과물이다. 대학도 R&D에 매달린 지 오래다. 연구과제 수주와 특허신청 등에 따라 승진, 대우에 대한 인센티브가 증가하고, 연구비 없는 교수는 대학에서 소외될 정도가 됐다.

문제는 국가 지원 연구비를 주로 수도권 대학이 독점한다는 데 있다. 수도권은 교수 인력도 풍부하거니와 연구를 지원하는 전임연구원, 전일제 박사, 석사 등이 많은 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충남 천안의 경우 전일제 박사나 석사를 모집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 다른 지방대도 같은 형편이라 생각된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학문을 지속하려는 학생은 지방 연구생태계가 취약하므로 졸업 후 서울 소재 대학원으로 취학하고 있다. 이러니 입시생들도 대학부터 미리 서울로 가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소위 ‘인 서울’에 매진하고 있다. 지방대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이런 흐름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의 획기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 주관 연구는 안정적 재정지원이란 장점 뒤에 자율성, 창의성 취약이라는 약점이 숨어 있다. 국책연구기관 운영비인 출연금 지원은 예산과 사업계획을 관계 행정기관에서 미리 승인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기관의 의지가 연구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대학이 학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유롭게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구자가 연구 과제와 발표를 통제받는다면 좋은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원전 문제 같은 큰 이슈에 원자력연구원이나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의견을 냈다는 보도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많은 선진국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대학에 위탁해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차기 정부도 국책연구기관들을 지방대학에 위탁해 연구원을 교수로 임용하고 국가 연구비를 대학에 주면 연구생태계가 살아나고 지방 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연구기관 관리체계에 관한 논의가 많았지만 주로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부처 간 힘겨루기 중심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학문과 연구 환경을 살리고 지역 경제도 살리면 지역균형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이 지역 대학으로 간다면 전국의 기계공학도 조선공학도는 창원 대학으로, 화학과 화공과 지망생은 목포 대학 등으로 향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박윤형 순천향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국책연구원#수도권 대학#독점#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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